지난 여름 은퇴를 하신 어머니는 이미 환갑을 넘기셨지만, 아직까지도 마음 가득히 동심을 품고 계신다. 그동안 고생도 많이 하셨지만, 아직 육십대라고 하기엔 너무 젊고 건강하시다. 말없이 보여주신 어머니의 삶은 내가 평생 보고 배워야할 내 인생의 교과서 같은 것이었다. 그러고보면 나는 참 운이 좋은 녀석이다. 정말 좋은 어머니를 만났고, 정말 좋은 아내를 만났으며, 정말 예쁘고 사랑스러운 딸을 만났으니 말이다.
지난 주말 어머니는 뜬금없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나는 왜 젊은 애들이 연예인을 보고 ‘오빠’, ‘오빠’ 하면서 난리치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어머니도 드디어 오빠부대에 합류를 하신 것이다. 도대체 나이 육십을 넘긴 할머니 – 물론, 어머니는 할머니라고 불리기엔 너무 젊으시다 – 를 사로잡은 녀석이 누구란 말인가?
그는 연기자 김명민이었다. 어머니는 그를 처음 본 것이 “불멸의 이순신” 때였다고 말씀하셨다. 어머니의 표현에 따르면, 진짜 이순신보다도 더 이순신 같이 연기를 했다는 그 배우. 어머니는 김명민이 나오는 드라마를 거의 다 봤다고 하셨다. 하얀거탑의 장준혁을 거쳐 요즘 인기리에 방송되고 있는 “베토벤 바이러스”까지 그의 연기는 어머니 말씀마따나 더할나위 없이 무르익고 있었다.
꿈? 그게 어떻게 니 꿈이야? 움직이질 않는데.
그건 별이지.
하늘에 떠 있는, 가질 수도 없는, 시도조차 못하는,
쳐다만 봐야 하는 별!
누가 지금 황당무계 별나라 얘기하재?
니가 뭔갈 해야 될 거 아냐?
조금이라도 부딪치고, 애를 쓰고,
하다 못해 계획이라도 세워봐야
거기에 니 냄새든 색깔이든 발라지는 거 아냐?
그래야 니 꿈이다 말할 수 있는 거지.
아무거나 갖다 붙이면 다 니 꿈이야?
그렇게 쉬운 거면, 의사, 박사, 변호사, 판사
몽땅 다 갖다 니 꿈하지 왜?
꿈을 이루라는 소리가 아냐.
꾸기라도 해 보라는 거야.
사실 이런얘기 다 필요없어.
내가 무슨 상관 있겠어. 평생 괴로워할 건 넌데.
난 이정도 밖에 안되는 놈이구나, 꿈도 없구나,
꾸지도 못했구나, 삶에 잡아 먹혔구나.
평생 살면서 니 머리나 쥐어 뜯어봐.
죽기 직전이 되어서야 ‘지휘’?
단발마의 비명 정도 지르고 죽던지 말던지
어머니를 사로잡은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는 지금 나에게 “꿈”이란 무엇인지를 말해주고 있다. 꿈이란 그냥 하늘에 있는 별이 아니라고. 무언가를 해야 그것이 나의 꿈이 될 수 있다고. 그렇다면 나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강마에. 너는 나의 어머니를 사로잡을만한 녀석임을 인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