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암
백양사 약사암 가는 길에 가을이 저물어 간다. 가을 단풍 잎새가 거의 다 떨어지고, 저멀리 백학봉이 수백년 묵은 갈참나무 사이로 허연 이마를 드러낸다. 그 백학봉 중턱에 약사암과 영천굴이 있다. 영험한 약사여래의 기운과 영천굴의 석간수로 몸과 마음의 병을 고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올랐다. 그 오르막에서 자연의 신비와 붓다의 자비로 사람들은 속세의 번뇌와 업보를 털어내곤 했다.
가을은 쓸쓸히 끝나가는데, 미련이 남은 나뭇잎들이 바람에 흔들린다. 단풍의 절정은 지났고 겨울은 저만치 다가왔지만, 마지막 황혼을 불사르듯 울긋불긋 가을 빛들이 하얀 바위에 수를 놓는다. 이만하면 됐다, 이만하면 됐다. 여전히 처연한 단풍 속의 약사여래를 뒤로 하고 발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