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노무현 지지자가 정동영에게 표를 줄 수 밖에 없는 그 심정을 변명이란 표현으로 문국현에게 미안함을 전했다. 그는 문국현을 2007년도판 노무현으로 격상시키면서 문국현에게서 희망을 보았으나 거악인 이명박을 물리치기 위해 할 수 없이 정동영에게 투표한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노무현 지지자와 문국현 지지자는 양립할 수 없다. 정작 문국현 본인은 노무현과 참여정부를 부정하고 있으며, 노무현도 문국현을 자신의 정치적 계승자로 생각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여 노무현을 지지하는 나는 문국현을 지지할수 없다. 더군다나 문국현을 2007년의 노무현이라고 얘기하는데에는 전혀 동의할 수 없다.
문국현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은 인정할 수 있지만, 이 나라의 정통성을 짊어지고 나갈 지도자가 되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그는 우리 사회의 가장 근원적인 모순과 거악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것 같다. 왜 김대중과 노무현의 10년 민주정부가 이렇게 엄청난 성과를 내고도 이런 가시밭 길을 걸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정작 싸워야 할 상대가 무엇인지, 자신은 어느 편에 있는지 모르고 있다. 왜 노무현이 임기 말년까지 “공수처 설치”를 주장하고, “기자실 통폐합”을 하는지 문국현은 잘 모른다.
정치경력이 일천한 문국현이지만, 그는 한 번도 제대로 맞서지 않았다. 늘 계산했고, 돌아가려 했다. 노무현은 밭을 탓하지 않는 농부였지만, 문국현은 비를 내리고 땅을 만드는 신의 경지로 본인을 자리매김했다. 노무현은 국민과 함께 땀흘리고 뒹구는 농투서니였고, 문국현은 모든 문제를 자기가 해결할 수 있다는 “어디선가 나타난” 전지전능의 해결사가 되길 원했다.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깔끔하게 해결하는. 그에게 과연 그럴 능력이 있을까?
정치적 수세에 몰린 문국현은 급기야 넘지 말아야 할 선까지 넘어버렸다.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는 18일 “박 전 대통령의 삶에서 부정과 부패가 있었느냐, 박정희 대통령은 깨끗하게 살았다”고 말했다.
[文, ‘박정희 삶에 부정부패는 없었다’, 뉴시스]
아무리 어려워도 이런 말은 하는 것이 아니다. 립서비스라도 말이다. 박정희야말로 세계 독재사에 우뚝 솟을만한 인물이고 그의 삶이 부정과 부패로 점철되어 있는, 급기야 부하의 총에 맞아 세상을 등진 인물 아닌가. 문국현이 정말 몰라서 이런 말을 했다면 천박한 역사인식을 드러낸 것이고, 알고도 했다면 참으로 기회주의적인 것이다.
문국현은 좌우를 넘나들면서 자기가 필요한, 대중에게 다가갈만한 정책들은 다 골라냈다. 노무현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노무현에게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아무리 욕을 먹고, 대통령직을 내놔야 한다 해도 노무현에게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문국현은 그것이 이율배반적이라도 할지라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 양립시킨다. 예를 들어, FTA를 찬성하면서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것 같은. 노무현은 그런 식으로 하지 않는다.
정치인으로서 문국현은 노무현과 비교할 수 있을 만한 인물이 아니고, 아직까지 그러한 가치를 보여주지도 못했다. 더군다나 그가 참여정부를 계승할 사람도 아니니 노무현 지지자들이 문국현을 지지할 이유도 없고, 지지할 수도 없다. 더군다나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노무현 지지자가 문국현에게 표를 주는 것은 이명박을 도와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한 가지 덧붙인다면, 문국현을 지지한다고 하면서 이명박이 당선될까봐 할 수 없이 정동영에게 표를 던진다고 얘기하는 것은 사실 상당히 비겁한 자기 위선이자 합리화다. 이런 비판적 지지론은 87년 대선 때부터 진보 진영의 단골 손님처럼 등장했다.
자기의 세계관과 지향은 “선택”이라는 행위가 말하는 것이다. 권영길을 지지하고 싶은데 할 수 없이 노무현한테 표를 던졌다 또는 문국현을 지지하는데 어쩔 수 없이 정동영에게 표를 던졌다라는 것이야 말로 자기 변명일 뿐이다. 그런 것은 없다. 결국 세상을 바꾸는 것은 노무현을 찍었다는 행위이지, 권영길을 지지했다는 마음이 아니다. 우리 좀 담백하게 살자. 애초부터 비판적 지지라는 것은 없다.
나는 노무현 지지자이므로, 문국현을 지지할 수 없다. 노무현의 정치 철학과 정책을 계승할 세력을 선택할 것이다. 그 세력은 여전히 유시민, 한명숙, 이해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