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마초들의 슬픈 자화상
군가산점 부활 움직임과 한국 스포츠계의 성폭력 사태는 얼핏 전혀 다른 사안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우리나라 마초들의 위기의식과 열등감이 스며 있다.
우선 군가산점 제도부터 살펴보자. 청와대가 이미 논평을 냈지만, 취직할 때 군필자에게 부여했던 군가산점 제도는 이미 오래전에 위헌 판결이 났던 것이다. 이것은 당연히 남녀평등과 장애인 차별 금지라는 헌법적 가치에 위배되는 것일 뿐더러, 국방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한 수많은 예비역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이다.
병역은 우리나라 남자들에게 주어진 의무다. 의무에 대해 보상을 주장하는 것도 자존심 구기는 일이지만, 만약 군 복무에 대한 보상을 주장하려 한다면, 취업 후 군대 경력을 인정해 달라고 얘기하는 것이 사리에 맞다. 또는 국가가 부과하는 병역의 의무에 동의할 수 없다면, 모병제를 주장하고, 그것을 관철시키기 위해 노력하라.
군대를 갔다 왔기 때문에 취업시험에 가산점을 부여해야 한다는 마초들의 논리는 그 근거가 부족하다. 취업시험에서 점수가 낮게 나오는 것은 공부를 열심히 안했거나 실력이 모자라서일 뿐이지 군대를 다녀온 것과는 별 상관이 없다. 열등감이 극에 달한 어떤 이들은 여자들에게도 똑같이 병역의 의무를 지워야 한다고 설레발을 친다. 과연 그렇게 하는 것이 남녀 평등에 맞는 것일까? 그런 주장을 할 정도로 그들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철저하게 평등주의자들이고 떳떳한가?
내가 보기에 평균적으로 우리나라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훨씬 노동의 양이 많다. 맞벌이 부부만 따져 보더라도 적게는 두 배에서 많게는 다섯 배까지 아내들이 남편들보다 훨씬 가사노동을 많이 한다. 당신들의 어머니, 당신들의 아내가 감당해야 했던 노동의 수고를 곰곰히 생각해 보라. 아니 지난 주에 있었던 설연휴를 한번 떠올려 보라. 당신들의 어머니나 아내나 며느리가 없었다면 설 명절에 차례나 제대로 지냈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정말 여자들에게 병역의 의무까지 지우고 싶은가? 그리되면 정말 대한민국 남자들은 여자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언제 당신들의 어머니나 당신들의 아내가 그 노동의 댓가를 요구한 적이 있는가? 상식이 있고, 자존심 있는 남자들이라면 이런 낯뜨거운 주장은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스포츠계 성폭력 사태는 군가산점 제도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이것은 스포츠계의 지도자라는 자들이 “지도”라는 명목으로 지속적으로 범죄를 저질러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범죄자들이 한둘이 아니고 거의 모든 종목에서 광범위하게 저질러졌다는 것이 충격이다. 이런 파렴치한 자들이 지도자랍시고 뻔뻔하게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있는 사회 풍토에 얼마나 많은 어린 여자 선수들이 절망했겠는가?
여자 선수들을 다스리고 통제하기 위해서 그 선수들과 자야 한다고? 도대체 그들의 머리 속에는 뭐가 있는 것일까? 실력 없고, 내세울 것이라고는 X 밖에 없으니 성폭력을 저질러서라도 지배를 하겠다? 여자 선수들이 무슨 성노리개감이라도 된단 말인가. 이런 사고 방식의 근간에도 마초들의 열등의식이 여지없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합리적 이성과 실력으로 여자 선수들을 지도할 수 없는 자들이니 말이다.
한국 남자들은 성차별이나 성폭력 같은 사회 문제를 얘기할 때 여자들은 타자화하고 대상화한다. 여자들은 남자들의 적이거나 또는 남자들의 상대 개념이 아니다. 여자들은 남자들의 어머니거나 또는 남자들의 아내거나 남자들의 딸이거나 며느리인 것이다. 성차별이나 성폭력은 여자들만이 당하거나 견뎌야할 문제가 아니고, 남자들의 어머니, 아내, 딸, 며느리의 문제인 것이다. 결국 남자들에 의해 저질러지는 문제지만, 그것은 우리 모두의 문제이고 우리 모두가 극복해 나가야 하는 것들이다.
한국 남자들의 과거의 누렸던 몹쓸 권위들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그것들을 끝까지 지켜보겠다고 마초 근성을 드러내지 말라. 그러면 그럴수록 초라해지는 것은 남자들 스스로다. 당당한 남자로 살고 싶다면 마초 근성을 버려야 한다. 남자들은 여자들보다 우월하지 않다.
한국 남자들이 언제나 밴댕이 소갈 딱지를 뗄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