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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류시화

별의 먼지

별의 먼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로
한 번도 들은 적 없는 이름으로
당신이 온다 해도
나는 당신을 안다.
몇 세기가 우리를 갈라놓는다 해도
나는 당신을 느낄 수 있다.
지상의 모래와 별의 먼지 사이 어딘가
매번의 충돌과 생성을 통해
당신과 나의 파동이 울려퍼지고 있기에.

이 세상을 떠날 때 우리는
소유했던 것들과 기억들을 두고 간다.
사랑만이 우리가 가져갈 수 있는 유일한 것
그것만이 한 생에서 다음 생으로
우리가 가지고 가는 모든 것.

<랭 리아브, 별의 먼지, 류시화 옮김>

If you came to me with a face I have not seen,
with a name I have never heard, I would still know you.
Even if centuries separated us, I would still feel you.
Somewhere between the sand and the stardust,
through every collapse and creation,
there is a pulse that echoes of you and I.

When we leave this world,
we give up all our possessions and our memories.
Love is the only thing we take with us.
It is all we carry from one life to the next.

<Lang Leav, Stardust>
천국에 가기 위해

천국에 가기 위해

“천국에 가기 위해 그대는 이 생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경전에 적힌 613가지 선행을 실천하겠습니다!”

“그 613가지 선행을 실천하는 길이 무엇인가?”

갑작스러운 질문에 이체크는 대답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선지자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시장에서 노래하는 눈먼 거지는 천사일지도 모른다네. 그리고 그대의 아내는 인생의 수수께끼를 풀 열쇠를 갖고 있을 수도 있어. 신의 계율을 압축하면 이것이라네. 지금 이 순간 눈앞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고, 지금 이 순간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하게.

<류시화, 인생 우화, 연금술사, pp. 266-267>

단순하게 살고 싶다

단순하게 살고 싶다

나는 단순하게 살고 싶다.
비가 내릴 때 창가에 앉아
시험 치지 않을 책을 읽고 싶다.
무언가를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원해서 그림을 그리고 싶다.
내 몸에 귀를 기울이고 싶고
달이 높이 떠올랐을 때 잠들어
천천히 일어나고 싶다.
급히 달려갈 곳도 없이.
나는 인류가 스스로 부과한
돈과 시간, 혹은 어떤 인위적인 제한들에 의해
지배받고 싶지 않다.
나는 그저 존재하고 싶다.
경계 없이, 무한하게.

I want to live simply.
I want to sit by the window when it rains
and read books I’ll never be tested on.
I want to paint because I want to,
not because I’ve got something to prove.
I want to listen to my body,
fall asleep when the moon is high and wake up slowly,
with no place to rush off to.
I want not to be governed by money or clocks
or any of the artificial restraints
that humanity imposes on itself.
I just want to be, boundless and infinite.

<류시화, 시로 납치하다 중에서>

이타카, 삶은 여정이다

이타카, 삶은 여정이다

오쇼 라즈니쉬가 얘기했듯이 “삶은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살아야 할 신비”다. 삶은 무엇을 이루려는 목표가 아니고 경험해야 하는 과정이다. 그 순간순간의 경험이 삶이다. 오디세우스가 이타카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그의 삶은 거대한 신화를 만들어낸다. 이타카는 삶의 여정을 떠나게 하는 하나의 수단일 뿐, 그 자체로 의미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삶을 산다. 그 순간순간을 최대한으로 경험하는 것만이 유일한 삶의 방법이다.

이타카로 여행을 떠날 때
기도하라, 그 길이 모험과 배움으로 가득한
긴 여정이 되기를
라이스트리고네스와 키클롭스
분노에 찬 포세이돈의 진노를 두려워하지 말라
너의 정신이 고결하고
너의 영혼과 육체에 숭고한 감정이 깃들면
그들은 너의 길을 가로막지 못하리
네가 그들을 영혼 안에 들이지 않고
너의 영혼이 그들을 앞세우지만 않으면
라이스트리고네스와 키클롭스와 사나운 포세이돈
그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으리

기도하라, 그 길이 긴 여정이 되기를
큰 즐거움과 큰 기쁨을 안고
처음 본 항구로 들어가는
여름날 아침이 수없이 많기를
페니키아 시장에서 길을 멈추고
멋진 물건들을 사라
진주와 산호와 호박과 흑단
온갖 종류의 감각적인 향수를
가능한 한 많은 관능적인 향수를
이집트의 여러 도시들에 들러
그곳의 현자들에게 배우고 또 배우라

언제나 이타카를 마음에 두라
그곳에 도착하는 것이 너의 최종 목표이니
그러나 결코 서두르지는 마라
여행은 여러 해 계속되는 것이 좋다
그리하여 늙어서 그 섬에 도착하는 것이 더 나으니
너는 길에서 얻은 모든 것들로 이미 풍요로워져
이타카가 너를 풍요롭게 할 것이라 기대하지 않으리

이타카는 너에게 아름다운 여행을 선물했다
이타카가 없었다면 너는 길을 떠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제 이타카는 너에게 줄 것이 아무것도 없다

설령 이타카가 보잘곳없는 곳일지라도
이타카는 너를 속인 적이 없다
너는 길 위에서 경험으로 가득한 현자가 되었으니
이타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미 이해했으리라

<콘스탄틴 카바니, 류시화 옮김, 이타카(Ithaka)>

시를 쓰는 법

시를 쓰는 법

하이쿠의 성인이라 불리는 마쓰오 바쇼는 시를 쓰는 방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소나무에 대해선 소나무에게 배우고
대나무에 대해선 대나무에게 배우라.
그대 자신이 미리 가지고 있던 주관적인 생각을 벗어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생각을 대상에 강요하게 되고 배우지 않게 된다.
대상과 하나가 될 때 시는 저절로 흘러나온다.
그 대상을 깊이 들여다보고, 그 안에 감추어져
희미하게 빛나고 있는 것을 발견할 때 그 일이 일어난다.
아무리 멋진 단어들로 시를 꾸민다 해도
그대의 느낌이 자연스럽지 않고
대상과 그대 자신이 분리되어 있다면,
그때 그대의 시는 진정한 시가 아니라
단지 주관적인 위조품에 지나지 않는다.

<마쓰오 바쇼, 류시화 옮김, 바쇼 하이쿠 선집>

수호천사

수호천사

로나 번이 쓴 <수호천사>에는 천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간단한 방법이 나온다.

“나는 내가 하는 모든 일마다 나의 천사들이 나와 함께 하기를 원합니다.”

이 간단한 요청이 천사들에게 우리를 도울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 수호천사의 도움이 필요할 때 이런 기도를 해 보자. 그리하면 누구든지 천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나무의 시

나무의 시

나무에 대한 시를 쓰려면 먼저
눈을 감고
나무가 되어야지
너의 전생애가 나무처럼 흔들려야지
해질녘 나무의 노래를
나무 위에 날아와 앉는
세상의 모든 새를
너 자신처럼 느껴야지
네가 외로울 때마다
이 세상 어딘가에
너의 나무가 서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지
그리하여 외로움이 너의 그림자만큼 길어질 때
해질녘 너의 그림자가 그 나무에 가 닿을 때
넌 비로소 나무에 대해 말해야지
그러나 언제나 삶에 대해 말해야지
그 어떤 것도 말고

<류시화, 나무의 시>

이 시는 류시화가 아들 미륵이에게 주는 시였는데, 아내는 이 시를 읽으며 내가 생각난다고 했다. 아내는 나를 아들처럼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전생애가 흔들릴 때, 내가 외로울 때, 이 세상 어딘가에 (아니 정확히 얘기하면 내 옆에) 서 있는 나무가 바로 아내다. 항상 고맙고 사랑하는 나의 나무가 아내다. 나도 그의 나무가 될 수 있을까.

구르는 천둥이 남긴 말

구르는 천둥이 남긴 말

비를 내리게 하는 체로키 인디언 치료사 구르는 천둥(Rolling Thunder)이 남긴 말들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이 없이 할 수 있는 말들이 아니기 때문에 늘 가슴에 담아두면서 되새기고 싶다.
삶의 가르침은 그런 식으로 찾아오지 않는다. 단순히 자리에 앉아서 진리에 대해 토론한다고 해서 진리가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진리는 그런 것이 아니다. 그대는 삶 속에서 진리를 경험해야 하고, 진리의 한 부분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한다 해도 진리를 깨닫기가 어렵다. 진리는 아주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씩 다가오며 결코 쉽게 오지 않는다. (p. 54) 어떤 존재도 다른 존재를 해치거나 통제할 권리를 갖고 있지 않다. 어떤 개인이나 정부도 사람들을 강제로 어떤 조직이나 체제에 들어가게 하거나 학교나 교회로 보내거나 전쟁터에 내보낼 권리가 없다. 모든 존재는 고귀한 것이고 또한 생의 목적을 갖고 있다. 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서 스스로 자기를 다스리는 힘이 필요한 것이며, 그것이 곧 영적인 힘이다. (p. 264) 인간은 대지를 소유할 수 없다. 오히려 대지가 인간을 소유한다. 어떤 사람은 문서를 작성해 자신이 그 땅의 소유자라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이다. 우리는 대지의 소유자가 아니며, 누구도 그렇게 될 수 없다. 대지의 소유자는 ‘위대한 정령’이며, 다만 우리에게 그 권한이 부여되었을 뿐이다. 우리는 대지를 보호하는 자이다. (p. 344)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인 인디언들의 지혜를 감당하기 어렵다. 그들은 오래 전에 어떻게 살아야 할 지를 이미 깨달은 사람들이다. 얼굴 흰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하자 인디언들의 삶은 철저히 파괴되어 사라져 버린다. 몇몇 남겨진 인디언들의 잠언만이 우리를 일깨우고 있다. 과연 세상은 발전하는 것인가?
들풀처럼 살라

들풀처럼 살라

시간은 존재하는가? 흔히 과거, 현재, 미래라 불리는, 강물처럼 흐르는 시간은 존재하는가? 시간은 인간들이 만들어낸 가장 자연스럽고 강력한 관념 중 하나다. 지구 상에 인간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시간이란 관념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생명체들은 시간을 사는 것이 아니고, 순간을 살뿐이다.

인간들이 던지는 궁극의 질문들, “나는 누구인가”,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 “어떻게 살 것인가” 등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해결되기를 기다리며 인간들 주위를 맴돌았다. 깨달은 몇몇은 실마리를 남긴 채 지구별을 떠났고, 남겨진 자들은 여전히 무지의 어둠 속에서 헤맸다. 남겨진 자들에게 삶은 버거운 짐이었다.

예수가 태어난 지 2011년째 되는 해. 2011은 지극히 인위적이고 아무런 의미 없는 숫자이지만, 인간들은 또다시 지속되는 삶 속에 궁극의 질문을 던진다. “어떻게 살 것인가.”

들풀처럼 살라
마음 가득 바람이 부는
무한 허공의 세상
맨 몸으로 눕고
맨 몸으로 일어서라
함께 있되 홀로 존재하라
과거를 기억하지 말고
미래를 갈망하지 말고
오직 현재에 머물라
언제나 빈 마음으로 남으라
슬픔은 슬픔대로 오게 하고
기쁨은 기쁨대로 가게 하라
그리고는 침묵하라
다만 무언의 언어로
노래 부르라
언제나 들풀처럼
무소유한 영혼으로 남으라

<류시화, 들풀>

산과 들에 있는 풀과 나무와 바위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보여주지만, 인간들은 그것을 보려 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질문만 던질 뿐, 보이는 것을 보지 않는다.

법정 스님이 이 지구별을 떠나시기 전에 남기신 말씀.

삶을 마치 소유물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소멸을 두려워한다.
삶은 소유물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영원한 것이 이 세상에 어디 있는가. 모두가 한때일 뿐,
그러나 그 한때를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삶은 놀라운 신비요, 아름다움이다.
내일을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것은
이미 오늘을 제대로 살고 있지 않다는 증거다.

죽음을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것은
생에 집착하고 삶을 소유로 여기기 때문이다.

生에 대한 집착과 소유의 관념에서 놓여날 수 있다면
엄연한 우주 질서 앞에 조금도 두려워할 것이 없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정답은 이미 수천 년 전부터 명확하게 제시되었다. 다만,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뿐이다. 그리고 여전히 묻는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리석음이 원죄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