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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노무현

유시민의 글쓰기

유시민의 글쓰기

유시민이 쓴 책은 쉽고 유익하다. 그는 엄청난 연구의 산물로 책을 내지 않는다. 그는 이미 나와 있는 많은 이론이나 사실들을 잘 이해하고 요약하여 독자들에게 쉽게 전달한다. 그의 책이 쉽다고 해서 결코 깊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의 책은 쉽고 유익하고 재미있다.

유시민이 쓴 책을 거의 다 사서 읽는 편인데, 이번에 나온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은 글쓰기에 입문하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책이라 하겠다. 그가 밝히는 글쓰기에 관한 영업기밀(취향과 주장의 구별, 주장은 반드시 논증, 주제에 집중)과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좋은 글에 대한 기준(짧고 간결하며 군더더기 없는 글) 등이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글을 잘 쓰려고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유념해야 한다.

유시민이 쓴 책을 거의 다 읽는 사서 이유는 그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처럼 재주있는 사람이 기회주의자가 아니라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노무현이 위기에 처했을 때, 그는 노무현을 지키기 위해 홀홀단신 정치에 투신했다. 그와 같이 자유주의 성향이 있는 사람은 정치를 좋아하지도, 정치를 직업으로 삼지도 않는다. 그런 그가 노무현을 지키기 위해 정치인이 되었다. 때문에 그에게는 마음의 빚이 있다. 그래서 그가 쓴 책은 꼭 사야 한다. (사실 노무현도 글쓰기에 관한 한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정치인이었다.)

그는 몇 안 되는 단심을 지닌 정치인이었고, 정계은퇴한 지금은 지식소매상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글쟁이가 되었다. 그는 정치인이었을 때보다 지금 훨씬 더 자유롭고 행복해 보인다. 노무현은 떠났지만, 유시민이라도 행복하게 살아야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문재인의 고군분투는 처연하기까지 하다.)

유시민의 건투를 빈다.

 

노무현의 글쓰기

노무현의 글쓰기

참여정부 연설문 작성 비서관이었던 강원국의 증언에 따르면, 노무현 대통령은 글쓰기(특히, 연설문)에 관한 한 최고의 안목과 역량을 갖춘 정치인이었다. 수구 기회주의 세력들은 그의 말투를 문제 삼아 끊임없이 그를 헐뜯었지만, 연설에 관한 한 노무현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정치가였다.

강원국이 펴낸 <대통령의 글쓰기>라는 책에 노무현 대통령이 비서관에게 내린 32개의 글쓰기 지침이 나온다. 그것은 연설문뿐만 아니라 좋은 글을 쓰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금과옥조와 같은 것들이다. 그 중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정리해 본다.

  • 쉽고 친근하게 쓰게.
  • 글의 목적이 무엇인지 잘 생각해보고 쓰게. 설득인지, 설명인지, 반박인지, 감동인지.
  • 짧고 간결하게 쓰게. 군더더기야말로 글쓰기의 최대 적이네.
  • 수식어는 최대한 줄이게. 진정성을 해칠 수 있네.
  • 일반론은 싫네. 누구나 하는 얘기 말고, 내 얘기를 하고 싶네.
  • 문장은 자를 수 있으면 최대한 잘라서 단문으로 써주게. 탁탁 치고 가야 힘이 있네.
  • 접속사를 꼭 넣어야 된다고 생각하지 말게. 없어도 사람들은 전체 흐름으로 이해하네.
  • 통계 수치는 글의 신뢰를 높일 수 있네.
  • 상징적이고 압축적인, 머리에 콕 박히는 말을 찾아보게.
  • 글은 자연스러운 게 좋네. 인위적으로 고치려고 하지 말게.
  • 중언부언하는 것은 절대 용납 못하네.
  • 책임질 수 없는 말은 넣지 말게.
  • 중요한 것은 앞에 배치하게. 사람들은 뒤를 잘 안 보네. 단락 맨 앞에 명제를 던지고, 뒤에서 설명하는 식으로 서술하는 것이 좋네.
  • 한 문장 안에서는 한 가지 사실만을 언급해주게. 헷갈리네.
  • 평소에 사용하는 말을 쓰는 것이 좋네. 영토보다는 땅, 식사보다는 밥, 치하보다는 칭찬이 낫지 않을까?
  • 글은 논리가 기본이네. 멋있는 글을 쓰려다가 논리가 틀어지면 아무것도 안 되네.
  • 이전에 한 말들과 일관성을 유지해야 하네.
  •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표현은 쓰지 말게. 모호한 것은 때로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지금 이 시대가 가는 방향과 맞지 않네.
  • 단 한 줄로 표현할 수 있는 주제가 생각나지 않으면, 그 글은 써서는 안 되는 글이네.

<강원국, 대통령의 글쓰기, pp. 19-21>

이 나라는 한때 이런 수준을 대통령을 가졌었다. 불과 10년도 안 된 일이지만, 너무 현실성이 없어서 마치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얘기 같지 않은가.

위안

위안

사람 사는 세상이 오지 않는다 해도 이 한 장의 사진은 많은 이들에게 위안이 될 것이다. 비루하고 척박한 세상에도 아주 가끔은 이런 의인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다면.

노무현문재인

노빠로 산다는 것

노빠로 산다는 것

노빠로 산다는 것은
가슴에 주홍글씨 새기는 것
상식과 원칙을 부여잡고
사람 사는 세상 만들겠다는 죄 아닌 죄
지워지지 않는 낙인이 되어
돌팔매를 맞는 것

노빠로 산다는 것은
바람개비 하나 가슴에 품는 것
바람이 불면
행여 그가 왔을까
그리움이 눈물 되고 강물 되어
바다로 나아가는 것

노빠로 산다는 것은
어둠이 빛을 가리고
희망이 절망을 뛰어 넘지 못하는
탐욕과 공포의 벼랑 끝에서
노란 풍선 하나
푸른 하늘에 날리는 것

<소요유, 2013년 5월>

벌써 4년. 5월은 어김없이 찾아오고, 올해도 당신을 생각하며 눈시울을 붉힙니다. 누가 알았겠습니까. 당신을 좋아하고 사랑했다는 죄가 이런 천형 같은 끝없는 그리움이 될 줄.

“세상을 바꾸었다고 생각했는데 물을 가르고 온 것만 같다”는 당신의 말이 귀에서 울립니다. 애초에 세상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지도 아니 너무 오래 걸리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너무 빨리 세상에 왔고, 너무 빨리 세상을 떠났습니다. 멀리서나마 당신을 볼 수 있었던 그 순간이 꿈만 같습니다.

갈 길 잃은 노빠는 올해도 풍선을 날리고, 바람개비를 돌리며 당신을 생각합니다. 편히 쉬시길 기도합니다.

강금원 회장, 안부 전해 주시오

강금원 회장, 안부 전해 주시오

강금원 회장님!

당신은 참으로 멋진 사내입니다. 정의가 무엇인지, 의리가 무엇인지를 온몸으로 보여준 사내입니다. 당신은 영웅을 알아보았고, 그 영웅을 물심양면으로 도왔고, 그리하여 그 영웅이 뜻을 펼 수 있도록 했습니다.

당신의 무조건적인 후원과 사랑과 믿음이 없었더라면 그의 정치적 성공도 없었을 겁니다. 당신은 감히 그의 영원한 친구라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내입니다. 고맙고도 고맙습니다.

오늘 당신의 부음을 들었습니다. 가슴 끝이 아렸습니다. 말 못 할 슬픔이 밀려왔습니다. 우리들의 영웅을 도왔다는 이유만으로 당신은 모진 고초를 겪었고, 결국 당신도 세상을 떠났습니다.

부조리한 세상에서 영웅을 알아본 대가였습니다. 그 영웅에게 날개를 달아준 대가였습니다. 세상은 전혀 정의롭지 않은데,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나선 이를 도와준 대가였습니다. 사악한 권력의 개들은 당신을 가두고, 압박하고, 급기야 죽게 만들었습니다. 이 땅에서 다시는 그런 영웅이 나타나서는 안 되기 때문이겠지요.

하늘나라에 가서 그를 만나거든 부디 안부 전해 주시오. 우리들은 그저 허허로이 지내고 있다고. 하지만 그가 당신이 오는 것을 반길지는 알 수가 없네요. 그곳에서도 그는 당신에게  미안하다, 면목없다 얘기할 사람이니까요.

당신과 그를 보면 유유상종이란 말이 절로 떠오릅니다. 하는 일은 달라도 생각이 같고, 삶을 대하는 자세가 같았기 때문이겠지요. 이제 저 세상에서 편히 쉬세요. 그와 함께 그동안 못다 한 얘기도 나누고, 하늘나라 오솔길에서 산책도 하세요. 그가 이 세상에 대해 물으면 그냥 잊으라고 얘기해 주세요.

당신과 그가 한때 머물렀던 이 세상. 그 흔적이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 같네요.

당신의 명복을 빕니다.

검찰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네

검찰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네

어젯밤 꿈에 노무현 대통령을 보았다. 대통령은 몸이 편찮은 듯 누워 있었고, 나는 그 옆에서 검찰을 손 봐야 한다고 간언을 하고 있었다. 검찰의 인적 쇄신 없이는 그리고 사법 체계의 쇄신이 없이는 우리의 미래도 노무현 대통령의 미래도 없다고 거의 매달리다시피 말하고 있었다. 여기서 표현은 이렇게 점잖게 했지만, 꿈 속에서는 검찰을 쓸어버려야 한다고 얘기했던 것 같다. 대통령은 몹시 불편한 기색이었다. 그런 인위적인 방법으로는 안된다고 내 요구를 거절하였다. 나는 그런 대통령이 너무 답답했다. 그렇게 검찰에 당하고도 어떻게 저런 말씀을 하시는지 너무 답답하여 가슴을 치다 잠을 깼다. 새벽에 <나는 꼼수다> 봉주 7회를 듣다가 부천지검에 있는 박은정 검사가 양심선언을 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나경원 남편인 김재호 판사가 자기 배우자 건에 대해 특정인을 기소해달라는 청탁 전화를 직접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박은정 검사가 그런 양심선언을 하게 된 계기는 사람이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내가 이렇게 저항하는 이유는 사람이고 싶어서다.” <‘나꼼수’ 봉주 7회, 박은정 검사 “나경원 남편 김재호 판사 기소 청탁”, TV리포트>
나는 그동안 검찰이란 조직에 몸담은 자들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검사동일체라는 고리타분한 봉건적 원칙 아래 자신들의 특권만을 위해 하나로 똘똘 뭉쳐 있는 이 집단은 이 나라의 어느 범죄 조직과 견주어도 결코 뒤쳐지지 않는다. 이들은 우리 현대사의 가장 위대한 정치인을 가장 비열한 방법으로 죽인 자들이다. 결코 용서받지 못할, 결코 구원받을 수 없는 죄악을 저지른 자들이다. 그런 추악한 집단 안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오늘 박은정 검사를 통해 알게 되었다. 오늘 또 한사람의 의인을 발견했다. 그리고 왜 꿈 속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검찰을 쓸어버리자는 내 요구를 거부했는지도 알게 되었다. “강물은 바다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말씀이 가슴에 사무친다. 박은정 검사의 이름 석자를 이 블로그에 남겨 기억하고자 한다. 우리 모두는 그 무엇이기 이전에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한다.
가해자들이 지배하는 세상

가해자들이 지배하는 세상

2011년 12월20일, 대구의 한 중학생이 친구들의 집단 괴롭힘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학생의 유서가 공개되면서, 그 학생을 괴롭혀온 가해자들의 만행은 세상을 분노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다. 친구에게 욕설과 폭행은 기본이고, 심지어 물고문까지 가했다는 사실에 이르러서 사람들은 경악했다. 괴롭힘을 당했던 학생은 스스로 생을 마감했고, 가해 학생들은 미성년자임에도 불구하고 이례적으로 구속되었다.

2011년 12월 30일,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민주화운동 시절 받은 고문의 후유증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김근태 상임고문은 3선 의원을 지냈으며, 노무현 정부 때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하기도 했다. 1985년 전두환 군부독재 시절에 그는 이근안으로부터 한달 가량 물고문, 전기고문 등을 당했다. 그 고문의 후유증으로 김근태는 파킨슨병을 얻었고, 결국 6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김근태를 고문한 이근안은 2000년에 체포되어 7년 징역을 살다가 지금은 개신교 목사가 되었다. 군부독재의 원흉, 전두환은 여전히 주머니에 마르지 않은 29만원을 넣고 다니면서 잘먹고 잘살고 있다.

2011년 12월 14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1000번째 집회가 열렸다. 지난 20년 동안 할머니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랑곳하지 않고 매주 수요일마다 일본의 만행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요구했다. 그동안 많은 할머니들이 가슴에 한을 품고 세상을 떠났다. 일본은 여전히 1965년 한일협정으로 모든 부채를 탕감했다는 입장이고, 오히려 일본대사관 앞에 세워진 위안부 동상을 철거하라고 요구했다.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대통령은 봉하마을 부엉이 바위에서 몸을 던졌다. 검찰과 언론으로 대변되는 기득권층의 집단 괴롭힘이 그를 저 세상으로 보낸 것이다. 물론, 그 검찰과 언론의 뒤에는 이명박과 한나라당이 있고, 그 뒤에는 재벌이 있었다. 그들은 친일과 군부독재 그리고 기회주의라는 공통된 속성을 지니고 있었기에 노무현이라는 인물을 살려둘 수 없었다. 이명박은 여전히 국민들을 상대로 사기를 치고 있고, 한나라당은 이 나라 국회의 과반 이상을 점하고 있다. 친일과 독재 부역 언론인 조중동은 여전히 신문시장의 7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중학생들의 학교 폭력과 집단 괴롭힘이 과연 그들만의 문제일까? 과연 학교 교육만이 잘못되어서 일어난 일일까? 그것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병리 현상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거울이다.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은 3대가 망하고, 친일파들은 기득권세력이 되어 이 나라를 지배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고문하고, 수천억원의 부정부패를 일삼은 군부독재의 원흉이 버젓이 고개를 들고 전직 대통령 행세를 한다. 민주운동가를 고문한 경찰은 목사가 되어 설교를 하고, 전과 14범 사기꾼에 속아 대통령으로 선출한 후 경제를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아무 죄도 없는 전직 대통령을 검찰과 언론을 동원하여 여론재판을 한 후 끝내 죽이는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서 아이들이 올바르게 자라길 바라는 것 자체가 비정상이다. 네가 성공하려면 네 경쟁자들을 밟아 이겨야 한다고 가르치는 학교, 친구한테 맞지 말고, 먼저 때리라고 가르치는 부모, 가해자가 되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세상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정의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고, 친구를 밟아 이겨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이 정글보다도 못한 무한경쟁 시스템이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지 궁금할 뿐이다.

친구들의 집단 괴롭힘에 목숨을 끊은 중학생은 잊혀질 것이며, 심성 착하고 가해자가 될 수 없는 또다른 학생들이 죽어나갈 것이다. 재벌과 한나라당, 조중동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들의 특권을 지켜나갈 것이고, 검찰과 경찰은 여태 그랬듯이 특권층의 주구 노릇을 할 것이다. 앞으로 노무현과 같이 정의를 목놓아 부르는 정치인을 나타나지 않을 것이며, 나타난다 하더라도 또 죽임을 당할 것이다.

2012년 새해가 밝았지만, 희망 따위는 별로 없다.

“아, 씨바, 노무현 보고 싶다”

“아, 씨바, 노무현 보고 싶다”

그래, 나 노무현 좋아. 난 자연인 노무현보다 남자다운 남자를 본 적이 없어. 나보다 남자다워. 난 서른 중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남자가 다 됐어. 그 전엔 나도 부분적으로 찌질했어. 하여튼 난 그런 사람 처음 봤고 아직까진 마지막으로 봤어.

아, 씨바, 노무현 보고 싶다.

이명박 같은 자가 그런 남자를 죽이다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내가 노무현 노제 때 사람들 쳐다볼까 봐 소방차 뒤에 숨어서 울다가 그 자리에서 혼자 결심한 게 있어. 남은 세상은,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그리고 공적 행사에선 검은 넥타이만 맨다. 내가 슬퍼하니까 어떤 새끼가 아예 삼년상 치르라고 빈정대기에, 그래 치를게 이 새끼야, 한 이후로. 봉하도 안 간다. 가서 경건하게 슬퍼하고 그러는 거 싫어. 체질에 안 맞아. 나중에 가서 웃을 거다. 그리고 난 아직, 어떻게든 다 안 했어.

<김어준, 닥치고 정치, p. 299~300>

김어준의 <닥치고 정치>를 보다가 이 대목에서 울컥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어떻게 이명박 같은 자가 노무현을 죽일 수 있었을까. 이런 일은 영화에서도 일어나지 않는 일인데, 이 빌어먹을 땅이 저주를 받긴 받은 모양이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하늘은 푸르고, 은행잎은 저리도 노랗게, 예쁘게 물드는데…

아, 씨바, 노무현 보고 싶다.

노무현 정신을 지키는 방법

노무현 정신을 지키는 방법

한 농부가 있었습니다. 그 농부는 세상에서 둘도 없는 아주 귀하고 소중한 씨앗을 얻었습니다. 농부는 그 씨앗이 너무나 소중해 몇 백년이라도 가슴 깊이 간직하고 싶었습니다. 아니 대를 이어 가보로 남기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농부는 그 씨앗을 아무도 모르는 곳에 보관하기로 했습니다. 세월이 가면서 그 씨앗은 서서히 마르기 시작했습니다. 씨앗은 생기를 잃었습니다. 씨앗은 너무나도 안전하게 보관되어 있었지만, 생명을 잃은 씨앗은 더 이상 씨앗이라 불릴 수 없었습니다. 농부도 그 씨앗의 존재를 잊기 시작했습니다.

또 한 농부가 있었습니다. 그 농부도 세상에 둘도 없는 귀한 씨앗을 얻었습니다. 농부는 이듬 해 봄에 그 씨앗을 밭에 뿌렸습니다. 농부는 씨앗이 싹을 틔우도록 온갖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때론 날이 너무 가물었고, 때론 세찬 바람이 불었으며, 때론 억센 비가 쏟아져 내렸습니다. 농부는 너무 힘이 들어 포기하고도 싶었지만, 씨앗이 죽지 않고 싹 틔우길 매일매일 기도했습니다. 드디어 씨앗은 온갖 어려움을 뚫고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가을이 되자 그 씨앗은 수천 아니 수만의 씨앗으로 되돌아왔습니다. 비록 처음의 그 씨앗은 땅 속에서 사라졌지만, 이제 그 씨앗과 똑같은 수천 수만의 씨앗을 얻게 되었습니다. 농부는 그 귀한 씨앗을 마을 사람 모두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모두들 그 귀한 씨앗을 받고 기뻐했고, 새봄이 어서 오길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그 씨앗이 바로 “노무현 정신”이란 씨앗입니다.

현역 정치인 중에 유시민과 이정희 만큼 노무현을 닮은 정치인은 없습니다. 그 두 사람은 “노무현 정신”을 누구보다도 더 잘 꽃피울 사람들입니다. 나는 참여당 대표 유시민과 민노당 대표 이정희를 신뢰합니다. 이제 두 사람이 함께 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당원들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쉽지만은 않은 길이란 것을 압니다. 하지만, 이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습니다. 노무현을 꼭 닮은 정치인들이 양당의 대표를 맡을 수 있는 기회는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오지 않을 것입니다. 많은 어려움이 있고, 많은 서운함이 있더라도 지금이 함께 할 기회입니다. 그 소중한 씨앗을 최소한 밭에 뿌려 볼 수 있는 기회입니다.

유시민이 정리한 노무현 대통령 자서전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통추 활동을 접고 새정치국민회의 입당을 하는 대목에서 3김청산에 대해 이렇게 얘기합니다.

원칙은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전략적, 전술적 명제는 타협할 수 있다. 나는 ‘3김청산’이라는 것은 원칙이 아니라 타협할 수 있는 전략적 명제라고 보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DJP연합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념과 노선을 100% 순수하게 밀고가기는 어렵다. [중략] 정당에 대해서도 그렇다. 누가 주도하는지를 본다. 주도세력의 색깔이 그 정당의 색깔이다. 대통령 후보가 김대중 총재로 결정된 이상 주도세력 문제는 정리가 된 것이 아닐까? [중략] 주도세력의 성격과 철학이 뚜렷하면 된다.

유시민과 이정희가 주도하는 정당이라면 그 당이 참여당이든, 민노당이든, 새로운 통합진보정당이든 크게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 두 사람이 주도하는 정당이 바로 “노무현 정신”이 살아있는 정당이기 때문입니다.

따지고 보면, 예수가 기독교를 창시하지 않았듯이, 노무현은 참여당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노무현은 참여당원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당원이 주인이 되고 당원 민주주의가 뿌리내린 정당의 당원이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그는 열린우리당이 해체되는 것에 대해 그렇게 서운해 했는지도 모릅니다.

손학규가 대표인 지금의 민주당은 김대중, 노무현의 민주당이 아닙니다. 신뢰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내년 두 번의 선거에서 그 민주당과 어떻게든 연합을 해야하기 때문에, 그리고 “노무현 정신”을 실현해내야 하기 때문에 지금 통합된 진보정당이 필요합니다. 진보정당들이 통합하면, 민주당이 지금처럼 쉽게 무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현재의 민주당은 유력한 대권주자가 없는 불임정당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유시민과 이정희가 함께 싹틔우고 꽃피울 통합되고 대중화된 진보 정당, 그 길을 함께 하고자 합니다. 그 길이 “노무현 정신”을 지킬 수 있는 가장 강고하고 올바른 길이라 믿습니다.

슬픈 5월, 노무현을 가슴에 묻다

슬픈 5월, 노무현을 가슴에 묻다

5월은 푸르름이다. 산천초목이 새로운 생기를 얻어 푸르게 피어나는 계절. 5월은 가장 아름다운 계절이지만, 가장 슬픈 계절이기도 하다. 지독하게 아름다운 것들은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지기 때문일까?

노무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뒤 꼭 두해가 지났다.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은 잊혀지기 마련이라지만, 때로는 잊혀지지 않는 것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사진만 보아도, 그의 목소리만 들어도, 그의 글만 읽어보아도 여전히 눈물이 흐르고, 목이 메인다. 그를 추모하는 전시회에 가서 울지 않으려 했지만, 때로는 이성으로 제어되지 않는 것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무엇인지 알았다.

불과 2년 사이에 노무현에 대한 평가는 많이 달라졌다. 생전에 많은 사람들이 그를 욕하고 비난했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그를 추모한다. 그에 대한 평가는 그의 삶과 죽음만큼 큰 간극을 보였다.

노무현을 탄핵으로 몰았던 민주당이 노무현의 맏상주인 것처럼 행세하고 있고, 노무현을 경포대라 비난했던 손학규가 민주당 대표가 되어 노무현 정신의 계승을 부르짖고 있다. 노무현 생전과 사후에 달라지지 않은 것은 여전히 이땅은 기회주의자들의 천국이라는 것이고, 노무현이 평가받는 이유는 단지 그가 죽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희망을 얘기하지만, 그것은 너무 이른 얘기다.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알지 못하고, 알려고 하지 않는다. 세상은 그렇게 쉽지 변하거나 바뀌지 않는다.

노무현의 후계자라 불릴만한 유시민은 요즘 생전의 노무현 만큼 비난을 받고, 욕을 먹는다. 그 이유는 생전의 노무현이 욕을 먹었던 이유와 같다. 특권과 반칙을 용납하지 않고, 상식과 원칙, 정의를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노무현을 보좌했던 이들도 유시민을 비난하는 것을 보면, 노무현의 길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가시밭길인가를 알 수 있다.

노무현의 죽음은 세상 사람들에게 일말의 연민을 느끼게 했지만, 그들의 비열함과 탐욕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유시민도 노무현 만큼 시달릴 것이고, 고통을 받을 것이고, 욕을 먹을 것이다. 하지만 유시민이 끝까지 노무현 정신을 놓지 않는다면, 노무현 지지자들은 유시민을 지켜야 한다. 지키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은 한번이면 족하다. 또다시 노무현 정신을 부여잡고 가는 이들을 노무현처럼 보낼 수는 없지 않은가.

해마다 아름다운 5월이면, 광주와 노무현으로 세상은 슬픔에 잠길 것이다. 노무현을 가슴에 묻은 나는 해마다 5월이면, 그를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릴 것이다. 그리고 유시민을 통해 노무현의 부활을 꿈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