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지배계급의 뿌리
우리 민족이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70년,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생긴 지 67년이 되었다. 1987년 형식적 민주화를 이룩한 지 30년 가까이 되었지만, 아직도 이 나라는 봉건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나라를 지배하는 권력자들은 가깝게는 군부독재와 친일파에 줄을 대고 있고, 멀게는 조선 후기 노론 세력에 뿌리를 두고 있다. 노론은 조선 숙종 이후 300년 간, 이 땅에서 단 한 번도 권력을 놓아본 적이 없다고 볼 수 있다. 노론의 후예들이 친일파로 살아남고, 그 친일파들은 해방 이후에도 이 땅에서 숙청되지 않고 권력을 움켜쥐고 있다. 정치 권력뿐만 아니라 경제, 문화, 언론, 사법, 행정, 학계 할 것 없이 우리 사회 거의 모든 분야의 권력을 노론의 후예들, 친일파의 후예들이 잡고 있다고 보면 된다.
이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는 수구도 아니고, 보수도 아니고, 진보는 더더욱 아니다. 그들을 규정할 수 있는 단 한마디는 바로 “기회주의”다. 그들은 권력을 잡고 생존하기 위해서 무한변신이 가능한 카멜레온 같은 자들이다. 그들은 친일파도 될 수 있고, 친미주의자도 될 수 있으며, 필요하다면 공산주의자도 될 수 있다. 권력을 위해서라면 아무것도 가리지 않는다.
이 나라 지배계급의 뿌리는 300년 전의 노론이었고, 노론의 영수는 송시열이다. 송시열은 “송자”라고 칭송되는 성현의 반열에까지 오른 이유가 바로 그 노론의 후예들이 여전히 이 나라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송시열은 기회주의자가 아니었지만, 철저히 사대부계급의 이익과 당파의 이익을 위해 한 평생을 살았다. 그에게는 나라도, 국왕도, 백성도 뒷전이었다. 그의 학문은 주자로 시작해 주자로 끝났는데, 그 주자학은 사대부의 지배 이데올로기였다.
한때 송시열의 제자였던 윤증의 편지를 보면 그의 인물됨을 짐작할 수 있다. 이 편지를 본 송시열은 크게 화를 내며, “나를 죽일 자는 바로 윤증”이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문하(송시열)께서는 한결같이 주자를 종주로 하고 사업은 대의에 두었으나, 자신에게 찬동하는 자는 친밀하게 대하고 바른 말로 뜻을 어기는 자는 화를 당하니 이 때문에 문하의 큰 이름이 온 세상을 덮지만 진실한 덕은 안으로 병듭니다. 굳세다는 것은 자신을 이기는 것을 말함인데 문하는 힘으로 남을 복종시키는 것을 굳세다고 하니 이는 참된 굳셈이 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문하의 위력을 두려워해서 복종하는 것이지 덕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니 이는 완연한 부귀가의 모습일 뿐 유학자의 기상이 없습니다.
<이덕일,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p.336>
이 나라 지배 권력의 뿌리를 알려면 송시열과 노론을 알아야 한다. 그들이 이 땅을 지배한 지 300년이 넘었다. 이 나라는 표면적으로는 민주 국가가 되었지만, 여전히 봉건적 계급 사회를 내포하고 있다. 지배계급은 모든 상부구조를 동원하여 끊임없이 노예들을 만들어내고 있으나, 그 노예들은 자신이 노예인지 모른다. 그리하여 이 지배구조는 별일 없이 지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