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번도 쉬운 적이 없었습니다
해방 이후, 우리는 세 명의 훌륭한 대통령을 가졌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세계 어느 나라 지도자와 견주어도 결코 부족함이 없는 걸출한 정치지도자였습니다. 따지고 보면, 이 척박한 한반도 남쪽에서 그런 훌륭한 대통령을 선출한 것은 모두 기적이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네 번의 도전 끝에 간신히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외환위기가 광풍처럼 몰아치던 시기였는데도 DJP 연합에 이인제의 출마까지 해서 겨우 1.6% 차이로 당선되었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처음 정권 교체를 한 것인데, 사실 이인제가 독자 출마하지 않았다면 이회창이 당선되었을 겁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도 역시 기적이었습니다. 민주당 후보가 된 것조차 기적이었습니다. 후단협의 분탕질부터 정몽준의 단일화 파기까지 영화 시나리오를 쓰라고 해도 이렇게 못 쓸 겁니다. 그리고 2.3% 차이로 신승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처음 박근혜와 1:1로 붙었을 때는 3.6% 차이로 졌습니다. 저들과 1:1로 붙으면 이길 수 있는 환경이 아닙니다. 박근혜가 탄핵되고 저들이 사분오열되자 그제야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사실 박근혜의 탄핵도 기적입니다. 사법부를 장악하고 있는 저들이 박근혜 탄핵에 동의했다는 사실은 박근혜의 용도 폐기를 의미합니다. 이때도 홍준표, 유승민, 안철수가 단일화했다면 이길 수 없었을 겁니다.
이번 20대 대선은 이재명과 윤석열의 1:1 대결이었습니다. 언론, 검찰, 사법, 경제, 행정, 교육 등등 거의 모든 기득권을 쥔 세력들을 이기려면 기적이 필요했습니다. 이재명이 얻은 표는 최소한의 상식을 가진 국민들이 보여준 최대치입니다. 그 최대치조차 기적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 정도지만, 우리는 그 기적이 좀 더 필요했습니다.
이번 선거 결과로 대한민국은 퇴행할 것입니다. 빈부격차는 더 커지고, 기득권 세력은 더 강고해질 겁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다시 기회가 올 것이고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지난 25년간 있었던 세 번의 기적처럼 희망을 잃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기회와 기적은 있을 겁니다.
다만, 문재인 대통령의 안위가 걱정됩니다. 저들이 노무현을 죽였듯이 분명히 문재인을 노릴 겁니다. 현직 대통령보다 인기 있는 전직 대통령을 바라지 않기 때문이고, 민주 세력의 구심점을 날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절대로 문재인을 노무현처럼 보내면 안 됩니다. 다른 것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문재인만은 지켜야 합니다.
단 한 번도 쉬운 적이 없었습니다. 이번에는 충분한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러니 오늘만 슬퍼하고 내일부터는 또 묵묵히 견디면 됩니다. 신은 정말로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모양입니다. 이제 조금 살만하니 또 이런 시련이 닥치네요. 지금보다 더 단련이 필요한가 봅니다. 우리 같이 견디어 냅시다. 당신이 있고, 내가 있고, 우리가 있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고생하신 당신에게 위로와 사랑을 보냅니다. 정말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