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들이 지배하는 세상
2011년 12월20일, 대구의 한 중학생이 친구들의 집단 괴롭힘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학생의 유서가 공개되면서, 그 학생을 괴롭혀온 가해자들의 만행은 세상을 분노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다. 친구에게 욕설과 폭행은 기본이고, 심지어 물고문까지 가했다는 사실에 이르러서 사람들은 경악했다. 괴롭힘을 당했던 학생은 스스로 생을 마감했고, 가해 학생들은 미성년자임에도 불구하고 이례적으로 구속되었다.
2011년 12월 30일,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민주화운동 시절 받은 고문의 후유증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김근태 상임고문은 3선 의원을 지냈으며, 노무현 정부 때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하기도 했다. 1985년 전두환 군부독재 시절에 그는 이근안으로부터 한달 가량 물고문, 전기고문 등을 당했다. 그 고문의 후유증으로 김근태는 파킨슨병을 얻었고, 결국 6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김근태를 고문한 이근안은 2000년에 체포되어 7년 징역을 살다가 지금은 개신교 목사가 되었다. 군부독재의 원흉, 전두환은 여전히 주머니에 마르지 않은 29만원을 넣고 다니면서 잘먹고 잘살고 있다.
2011년 12월 14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1000번째 집회가 열렸다. 지난 20년 동안 할머니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랑곳하지 않고 매주 수요일마다 일본의 만행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요구했다. 그동안 많은 할머니들이 가슴에 한을 품고 세상을 떠났다. 일본은 여전히 1965년 한일협정으로 모든 부채를 탕감했다는 입장이고, 오히려 일본대사관 앞에 세워진 위안부 동상을 철거하라고 요구했다.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대통령은 봉하마을 부엉이 바위에서 몸을 던졌다. 검찰과 언론으로 대변되는 기득권층의 집단 괴롭힘이 그를 저 세상으로 보낸 것이다. 물론, 그 검찰과 언론의 뒤에는 이명박과 한나라당이 있고, 그 뒤에는 재벌이 있었다. 그들은 친일과 군부독재 그리고 기회주의라는 공통된 속성을 지니고 있었기에 노무현이라는 인물을 살려둘 수 없었다. 이명박은 여전히 국민들을 상대로 사기를 치고 있고, 한나라당은 이 나라 국회의 과반 이상을 점하고 있다. 친일과 독재 부역 언론인 조중동은 여전히 신문시장의 7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중학생들의 학교 폭력과 집단 괴롭힘이 과연 그들만의 문제일까? 과연 학교 교육만이 잘못되어서 일어난 일일까? 그것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병리 현상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거울이다.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은 3대가 망하고, 친일파들은 기득권세력이 되어 이 나라를 지배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고문하고, 수천억원의 부정부패를 일삼은 군부독재의 원흉이 버젓이 고개를 들고 전직 대통령 행세를 한다. 민주운동가를 고문한 경찰은 목사가 되어 설교를 하고, 전과 14범 사기꾼에 속아 대통령으로 선출한 후 경제를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아무 죄도 없는 전직 대통령을 검찰과 언론을 동원하여 여론재판을 한 후 끝내 죽이는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서 아이들이 올바르게 자라길 바라는 것 자체가 비정상이다. 네가 성공하려면 네 경쟁자들을 밟아 이겨야 한다고 가르치는 학교, 친구한테 맞지 말고, 먼저 때리라고 가르치는 부모, 가해자가 되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세상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정의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고, 친구를 밟아 이겨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이 정글보다도 못한 무한경쟁 시스템이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지 궁금할 뿐이다.
친구들의 집단 괴롭힘에 목숨을 끊은 중학생은 잊혀질 것이며, 심성 착하고 가해자가 될 수 없는 또다른 학생들이 죽어나갈 것이다. 재벌과 한나라당, 조중동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들의 특권을 지켜나갈 것이고, 검찰과 경찰은 여태 그랬듯이 특권층의 주구 노릇을 할 것이다. 앞으로 노무현과 같이 정의를 목놓아 부르는 정치인을 나타나지 않을 것이며, 나타난다 하더라도 또 죽임을 당할 것이다.
2012년 새해가 밝았지만, 희망 따위는 별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