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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y: Travel

침연으로 가는 버스

침연으로 가는 버스

우즈베키스탄에서 타 본 버스들은 모두 낡았다. 앞 유리창에 금이 갔고, 차문에 고무줄이 매달려 있었다. 그 버스들은 사실 폐차장으로 가야 마땅해 보이는 것들이었다. 침연은 해발 3000미터 이상의 고지에 있는 마을이었다. 나는 그 버스를 처음 탈 때부터 이 버스로는 그렇게 높은 곳까지 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 버스는 시내에서 고장이 났고, 결국 우리는 다른 버스로 갈아타야 했다.

타쉬켄트 근방에서 제법 경치 좋은 곳이라 일컬어지는 그 곳은 사람들에게 물을 공급하는 수원지가 있었다. 우리나라 소양호보다 작아보이는 곳이었지만, 그곳 사람들에게는 없어서는 안되는 소중한 물의 공급지였다. 바다가 없는 우즈벡 사람들은 여름에 이 호수에 와서 수영을 한다고 했다. 먹는 물에서 수영을 해야 하는 사람들의 처지가 안타까웠다.

최근 서너달 동안 전혀 비가 내리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가 도착할 무렵, 석달만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침연(Chimyon)도 을씨년스러웠고, 길가에 사과를 내놓고 파는 마을 주민들도 비에 젖어 있었다. 중동에서는 손님이 왔을 때 비가 오면 그 손님을 극진히 대접한다고 한다. 물이 귀한 땅에서 비를 몰고 온 손님이 얼마나 반가울 것인가. 중동의 사막처럼 물이 귀하지는 않지만 우즈베키스탄도 많이 메말라보였다. 석달만에 비를 몰고온 우리가 얼마나 반가웠을까. 두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간 끝에 우리는 아주 작은 폭포를 보았다. 폭포에서 물이 쏟아지기는 했지만, 그 빈약함이 낯설었다.

점심식사는 오후 두시에 시작되어서 다섯시가 다 되어서 끝났다. 식사도중에 말을 타보는 일행도 있었고, 당구를 치러 간사람도 있었다. 말의 순대와 소의 혀가 나왔고, 즉석에서 구운 만두는 우리나라 만두와 다름없었다. 역시 망빨과 볶은밥을 먹었다.

빗방울이 탁자를 적시고, 바람이 불어 아름드리 호두나무에서 호두가 두두둑 떨어졌다. 침연에서의 하루는 그렇게 저물었다.

사마르칸트까지 따라온 낮달

사마르칸트까지 따라온 낮달

사마르칸트(Samarkand)로 가기 위해 기차를 탔다. 아침이 되었어도 지지 않는 낮달이 기차를 줄곧 따라왔다.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이 왜 초승달을 표상으로 사용하는지 알 것도 같았다. 기차는 끝이 없는 메마른 평원을 지나갔다. 목화밭이 끝없이 펼쳐진 곳도 있었고, 드문드문 사람이 사는 곳도 있었다. 그곳에는 어김없이 물이 흐르고 있었다. 사방에 지평선이 보였고, 마을에는 미루나무가 몇 그루 서 있었다.

기차 안에서 우리는 시를 읽었다.

새들의 가슴을 밟고
나뭇잎은 진다

허공의 벼랑을 타고
새들이 날아간 후,

또 하나의 허공이 열리고
그곳을 따라서
나뭇잎은 날아간다

허공을 열어보니
나뭇잎이 쌓여 있다

새들이 날아간 쪽으로
나뭇가지는,
창을 연다

<김완하, 허공이 키우는 나무>

땅은 나무를 키우기 버거워 보였다. 차라리 허공이 키운다고 하는 편이 나을지 모를 일이었다.

사마르칸트는 2750년이 된 중앙아시아 최대 도시 중 하나였다. 티무르(Amir Timur)의 무덤이 있었고, 울루그벡(Ulugbeg)의 천문대가 있던 도시였다. 레지스탄 광장(Registan Square)에는 세 개의 학교가 마주 보고 있었다. 건물마다 돔이 있었고, 아라베스크 무늬가 있었으며, 아치로 된 문이 있었다. 많은 건물들이 새로 복원되어 새것처럼 보였다. 낡아보이더라도 옛것 그대로 놔두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그것은 샤히-진다(Shahi-Zinda)라는 공동묘지도 마찬가지였다. 이 공동묘지에는 마법의 계단이 있는데, 올라갈 때의 계단 수와 내려올 때의 계단 수가 다르다고 했다. 공동묘지에는 말이 없는 무수한 사람들이 잠들어 있었고, 묘비에는 그들의 초상이 새겨져 있었다.

중앙아시아 메마른 땅에는 사마르칸트라는 보석이 숨겨져 있었고, 그것은 우리에게는 많이 낯선 것이었다. 비단길은 이 도시를 굽이쳐 지나갔던 것이다.

비단길은 비단이 아니었다

비단길은 비단이 아니었다

중앙아시아는 세계를 주름잡던 몇몇의 정복자의 의해 지배되었던 적이 있었다. 일찌기 알렉산더 대왕이 지나갔고, 몽골 칭기스칸의 지배를 받았으며, 14세기 아미르 티무르가 번성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 당시의 전쟁이란 것은 말을 타고 뿌연 먼지를 흩날리며 내달리는 것이었으리라. 감히 누가 수십만 명의 군대에 저항이라도 할 수 있었겠는가. 위대한 왕들의 군사들은 달릴 수 있는 데까지 달렸을 것이다. 그리고 후세 사람들은 그들이 갔던 곳을 정복했던 땅이라 지도 위에 선을 그었으리라. 정복이라는 것은 먼지를 날리며 지평선까지 달리는 것이었겠지.

아무다리야 강과 시르다리야 강이 흐르는 곳을 제외하고 땅은 풀 한 포기 키우기 힘들어 보였다. 이 팍팍하고 메마른 땅이 주목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유럽과 중국을 잇는 상인들의 장삿길이었기 때문이었다. 장사꾼들은 수십 마리의 낙타 등 위에 비단을 싣고 이 길을 지나다녔다. 한 번 왔다 가는데 5년의 시간이 걸렸다. 뱃길이 열리기 전까지 그 길은 동서양을 잇는 유일한 길이었으리라. 후에 사람들은그 길을 비단길이라 불렀다. 아름다운 이름을 갖게된 그 길은 결코 비단처럼 아름답지 않았다.

후에 이 땅은 소비에트 연방에 편입되었고, 스탈린은 연해주의 고려인을 강제로 이주시켰다. 70년 전의 일이다. 그들은 그 메마른 땅에서 까레이스키라 불렸다. 참으로 고단한 세월이었다. 우즈베키스탄 타쉬켄트에는 우즈벡인들도 있었고, 러시아인들도 있었고, 까레이스키들도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소비에트 연방에서 독립한 것을 후회했고, 어떤 사람들은 무덤덤하게 반응했다. 그들 대부분은 이슬람교를 믿었으나 그들의 이슬람교는 순박한 것이었다.

타쉬켄트의 대학생들은 사회주의 국가의 대학생들이 그랬던 것처럼 정장을 즐겨입었고, 발랄하기보다는 성숙해 보였다. 거리에는 대우차들로 넘쳤다. 지구 상에서 대우차의 비율이 가장 높은 도시처럼 보였다. 곳곳에 티무르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지구 상 어느 곳을 가든지 영웅이 필요한 법이다. 그들은 티무르를 위대한 왕으로 기념했고, 칭기스칸을 파괴적 정복자로 폄하했다. 역사는 그렇게 상대적인 것이다. 타쉬켄트의 티무르 박물관은 단 7개월만에 지어졌다고 안내인은 말했다. 소련에서 독립했으나 사회주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말이었다.

오늘 하루 끼니 때마다 망빨이라는 국을 먹었다. 망빨은 고기 국물에 토마토를 비롯한 각종 야채가 들어가 있는 국이었고,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이 가장 즐겨 먹는 음식 중의 하나였다. 망빨은 궁합이 잘 맞는 뜻이라고 한다. 바다가 없었기에 생선 구경을 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 대신 그들은 양고기, 소고기, 말고기 등을 즐겨 먹었다. 사람들 몸에서 양고기 굽는 냄새가 났다.

밤낮의 기온차가 제법 컸다. 밤에는 한가위가 보름달보다 더 큰 달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들은 특별한 명절을 지내지는 않았다. 늘 감사하며 사는 사람들이었다. 사람들은 낙천적으로 보였고, 순박해 보였다. 풍요롭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딱히 부족해 보이지도 않았다.

타쉬켄트 밤하늘에는 별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경건한 공항

경건한 공항

자히르는 무릎을 꿇었다. 눈을 감고 기도했고, 메카를 향해 절을 했다. 공항 활주로에 비행기가 착륙하는 모습이 보였다. 독실한 무슬림인 그는 자기 종교에 대해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시간이 되면 묵묵히 메카를 향해 기도할 뿐이었다. 그 장소가 어디인지 상관하지 않았다. 오늘은 단지 공항에 있었기 때문에 그는 공항에서 기도한 것 뿐이었다.

평범하면서도 엄숙한 그의 모습은 순식간에 공항을 모스크로 만들었다. 종교는 그렇게 스스로 울려 퍼지는 것이었다. 강요하고 침투해 들어가는 것이 아니었다. 소리내어 찬송하지도 간구하지도 않았지만 그의 겸손하고 경건한 자세는 나를 그리고 공항 전체를 압도했다. 그레고리안 성가가 은은하게 들리는 그 어떤 성당 보다도 더 성스러운 그의 모습에서 눈을 돌릴 수 없었다.

중앙아시아의 비단길을 가기 전 자히르가 머문 공항은 그렇게 경건하게 변해갔다.

뉴욕의 비루한 아침

뉴욕의 비루한 아침

뒷골목에서 지릿한 오줌 냄새가 나고, 신문 쪼가리들이 바람에 날렸다. 비둘기들은 사람들이 다가가도 아랑곳하지 않고 연신 뭔가를 쪼아 먹고 있었다. 오렌지색 작업복을 입은 청소부는 느릿느릿 빗자루를 움직였고, 집없는 사람들은 웅크리고 햇볕을 쬐고 있었다. 그 사이로 관광객들은 쉴 새 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사람들은 어디론가 끊임없이 가고, 노란색 택시들은 경적을 울려대며 사람들 사이를 헤쳐갔다. 사람들은 신호보다 먼저 거리를 건넜고, 차들은 신호가 바뀌어도 사거리를 지났다. 지극히 복잡하고 혼란스럽고 무질서했지만, 그들은 저마다의 목적에 아주 충실했다. 사실은 엄청난 질서를 내재하고 있는 것이었다.

지난 밤에도 오페라의 유령은 그 아름다운 목소리로 사람들을 유혹했을 것이다. 타임 스퀘어 그 번쩍이는 광고판앞에서 벌거벗은 카우보이와 사진을 찍으려는 여자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아침부터 담배를 피는 여자들은 꽁초를 아무데나 버렸다. 그들은 멋진 썬글라스로 얼굴을 가렸고, 꽉 끼는 바지는 둔부의 윤곽을 드러냈다.

근처 스타벅스 커피점에는 커피와 베이글을 사려는 뉴요커들로 붐볐다. 커피 냄새가 오줌 냄새와 섞였다. 그 냄새는 신문지의 잉크 냄새와 다시 섞였고, 버스에서 나오는 배기가스 냄새와 섞였다.

몇몇은 그 거리에서 달리기를 하고 있었고, 몇몇은 택시들 사이로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경찰들과 소방차들은 싸이렌을 울리며 지나갔다. 뉴욕의 아침은 늘 그렇듯 소란스러웠다.

허드슨 강과 대서양이 만나는 곳에 있는 이 작은 섬 맨하탄은 백인들이 인디언들에게서 단돈 24달러에 산 것이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것이 약 400년 전의 일이다. 24달러 짜리 섬은 수많은 사람들과 빌딩들과 차들로 붐볐고, 세계 돈의 중심이 되었다.

사람들은 뉴욕이 가장 매력적인 도시라 하지만 그 매력을 발견하기가 몹시 힘들었다. 자연이 유폐되어 있는 자본의 중심에서 어떤 삶의 냄새를 맡을 수 있을까.

숨을 쉬기엔 태양이 너무 뜨거웠다. 뉴욕의 6월은 너무 뜨거웠다.

나이아가라의 슬픔

나이아가라의 슬픔

물은 거침없이 흘렀다. 흐르고 흐르다 더 흐를 수 없을 때 물은 한없이 아래로 떨어졌다. 물보라가 치고 물안개가 피어올랐다. 12000년 동안 물은 쉴 새 없이 흘렀다. 그렇게 흐르고 떨어지면 마를 법도 했건만 물은 어디선가 끊임없이 모여들었다. 그것들의 근원은 어디란 말인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자연을 인간들은 범접하고자 했다. 떨어지는 물 주위로 사다리를 만들었고, 배를 타고 흐르는 물을 거슬렀다. 범접하고자 했으나 주위를 맴돌 뿐이었다. 할 수 없는 일을 하고자 하는 인간들의 허무가 사무쳤다. 떨어지는 물은 인간들의 범접을 용납하지 않았다. 물은 사납게 떨어짐으로써 인간들을 가르쳤다. 자연의 일부이면서도 스스로를 자연과 이간시키는 인간들은 물의 가르침을 깨닫지 못했다.

쉬지 않고 떨어지는 물을 인디언들은 나이아가라(Niagara)라 불렀고, 어머니 대지 위의 물을 흠모했다. 물은 변하지 않았는데, 그때 그 물을 몰래 사랑하던 인디언들은 사라졌다. 인디언들이 사라진 자리에 카지노들이 들어섰다. 카지노 불빛 아래서도 물은 끊임없이 흐르고 떨어졌다.

인디언들이 사라진 곳에서 흐르는 물은 그 떨어지는 깊이만큼 슬펐다.

Niagara River Horseshoe Falls Horseshoe Falls

Maid of the Mist Maid of the Mist

American Falls American Falls Rainbow Bridge

Whirlpool Lake Ontario

10여년만에 다시 찾은 북한산

10여년만에 다시 찾은 북한산

10여년만에 다시 와 본 북한산은 옛날 그대로였다. 몇몇 계곡이 안식년으로 쉬고 있었고, 기슭의 등산로들이 조금 정비되었을 뿐이었다. 산은 그 때나 지금이나 말이 없었고, 수 많은 등산객들을 넉넉히 품어주고 있었다.

중력을 거스르는 것만큼 힘이 드는 일이 있을까. 허벅지에 전해오는 중력의 팍팍함에 나는 쉽게 지쳐갔다. 근육속에서 글리코겐이 끊임없이 연소되었고, 그에 비례하여 쌓인 젖산에 나는 피로하였다. 한 번의 예외도 없이 산은 그렇게 나를 시험하고 있었다.

산을 오른다는 것은 전이될 수 없는 경험이다. 자기 몸으로 부딪혀가며 끝까지 올라본 사람들이 알 수 있는 그런 것이다. 그런 것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 혹시 깨달음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 아닐까.

산을 오르는 것은 고해성사 같은 것이다. 살아가면서 잘못했던 일, 다른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한 말, 너무 집착하여 헤어나올 수 없었던 것 등이 땀과 함께 씻겨 내려간다. 그것은 일종의 해방이고 용서다. 몸이 힘들수록 정신이 맑아지고, 그 숱한 걱정과 고민은 어디론가 사라져서 결국 내가 느끼는 것은 산에 오르는 나 자신 뿐. 산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자 가르침이다.

산에 빠져서 외롭게 된
그대를 보면
마치 그물에 갇힌 한마리 고기 같애
스스로 몸을 던져 자유를 움켜쥐고
스스로 몸을 던져 자유의 그물에 갇힌
그대 외로운 발버둥
아름답게 빛나는 노래
나에게도 아주 잘 보이지

산에 갇히는 것 좋은 일이야
사랑하는 사람에게 빠져서
갇히는 것은 더더욱 좋은 일이야
평등의 넉넉한 들판이거나
그즈넉한 산비탈 저 위에서
나를 꼼꼼히 돌아보는 일
좋은 일이야
갇혀서 외로운 것 좋은 일이야

[이성부, 좋은 일이야]

10여년만에 다시 산에 중독될 것 같다. 좋은 일이야.

뉴저지로 돌아오다

뉴저지로 돌아오다

뉴저지는 겨울이 깊어 을씨년스러웠다. 1월 중순까지 거의 봄날씨를 보이다가 2월부터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된 것이다. 윤달이 끼어서 그런지 올 겨울은 유난히도 늦게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겨울은 3월의 햇볕에 겨워 스스르 자취를 감추고 말 것 같다.

14시간의 비행과 시차로 몸이 많이 무겁다. 몸의 시계는 14시간의 공간 이동을 빠르게 감당하지 못한다. 밤낮이 뒤바뀌었다. 불면의 밤과 잠에 취한 낮이 나를 며칠 괴롭힐 것이다.

아내의 따뜻한 미소와 손길이 나를 위로해 주었다.

진도아리랑을 따라 멀리 간 친구에게

진도아리랑을 따라 멀리 간 친구에게

남도의 겨울은 하릴없이 따뜻했다. 바다 바람은 거셌지만 그 속에서 봄내음을 느낄 만큼 겨울은 저만치 멀어져 갔다. 동백은 좀 이르다 싶게 꽃을 피웠고, 그 꽃의 붉은 빛에 하늘은 높았다.

흔들리는 갈대와 푸른 배추밭 사이로 친구는 잠들어 있었다. 만든 지 얼마 안 된 비석에는 그를 보내는 남편의 짧은 글귀가 서럽게 새겨져 있었다. 친구가 남기고 간 세 아이의 이름이 눈에 시렸다. 엄마 없이 살아야 할 녀석들의 시간이 너무 무거워 보였다.

슬픔은 언제나 살아남은 이들의 몫이다. 친구와 함께 보냈던, 함께 나누었던 시간과 언어들이 눈 앞에 펼쳐졌다. 두터운 봉분 속에 누워있는 친구가 그리웠고, 그 흙의 두께조차 감당하지 못한 우리들의 부질없음이 야속했다.

진도의 개들은 허공을 보고 짖어댔고, 배추밭에 엎드려 있는 아주머니들은 부지런히 손을 놀리며 아리랑을 흥얼거렸다. 그 노래를 뒤로 하고 우리들은 기약 없는 발걸음을 옮겼다.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문경 새재는 웬 고갠가
구부야 구부구부가 눈물이로다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약산 동대 진달래꽃은
한 송이만 피어도 모두 따라 피네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나 돌아간다 내가 돌아간다
떨떨거리고 내가 돌아간다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치어다보느냐 만학은 천봉
내려굽어보니 백사지로구나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만경 창파 둥둥 뜬 저 배야
저기 잠깐 닻 주거라 말 물어 보자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내게는 첫눈이다

내게는 첫눈이다

첫눈은 설레임이다. 유난히 따뜻한 올 겨울은 첫눈의 설레임 대신 봄 햇살의 포근함만을 주었다. 나 같이 없이 사는 사람들에게는 따뜻한 겨울이 큰 축복이지만, 때로는 아무도 걷지 않은 눈 덮인 하얀 들판을 걸어보고 싶기도 하다. 강원도 평창에서 올 겨울 들어 처음 눈을 보았다. 떡가루 같은 하얀 눈 위에 딸아이와 같이 누워 하늘을 보았다. 이제 여섯 살이 되는 아이에게 잊혀지지 않은 추억이 되기를 바란다.
첫눈이 내렸다 퇴근길에 도시락 가방을 들고 눈 내리는 기차역 부근을 서성거렸다 눈송이들은 저마다 기차가 되어 남쪽으로 떠나가고 나는 아무데도 떠날 데가 없어 나의 기차에서 내려 길을 걸었다 눈은 계속 내렸다 커피 전문점에 들러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웠으나 배가 고팠다 삶 전문점에 들러 생생라면을 사먹고 전화를 걸었으나 배가 고팠다 삶의 형식에는 기어이 참여하지 않아야 옳았던 것일까 나는 아직도 그 누구의 발 한 번 씻어주지 못하고 세상을 기댈 어깨 한 번 되어주지 못하고 사랑하는 일보다 사랑하지 않는 일이 더 어려워 삶 전문점 창가에 앉아 눈 내리는 거리를 바라본다 청포장사하던 어머니가 치맛단을 끌며 황급히 지나간다 누가 죽은 춘란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돌아선다 멀리 첫눈을 뒤집어쓰고 바다에 빠지는 나의 기차가 보인다 헤어질 때 다시 만날 것을 생각한 것은 잘못이었다 미움이 끝난 뒤에도 다시 나를 미워한 것은 잘못이었다 눈은 그쳤다가 눈물 버섯처럼 또 내리고 나는 또다시 눈 내리는 기차역 부근을 서성거린다 <정호승, 첫눈>
정호승의 첫눈은 설레이는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