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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y: Thoughts

정부가 존재하는 이유

정부가 존재하는 이유

경제학의 아버지 아담 스미스(Adam Smith)에 따르면,

정부는 빈자들로부터 부자들을, 또는 가지지 않은 자들로부터 가진 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Civil government, so far as it is instituted for the security of property, is in reality instituted for the defense of the rich against the poor, or of those who have some property against those who have none at all.

<아담 스미스, 국부론>

2014년 대한민국 박근혜 정부는 아담 스미스가 말한 이 언술에 정확히 부합하고 있다. 가진 자들을 철저히 보호하고 부족한 세수는 서민들에게서 거둔다. 이것이 정부가 존재하는 이유다.

서민들은 부자를 보호하는 정부를 지지하고, 그리하여 그들이 자랑스럽게 말하는 자유민주주의는 완성된다. 이러한 정부를 지지하고 선출하는 서민들을 노예라 부른다. 따라서 그들이 말하는 자유민주주의는 사실상 노예제가 내재된 정치 체제를 의미한다.

가장 슬픈 코미디는 이들 노예들이 스스로 노예인지도 모르고 정부를 앞장서서 옹호하고 있으며, 그 선봉에 어버이연합과 일베충 등이 있다. 민주주의를 한다는 나라에서 정부의 수준은 그 나라 국민의 수준과 같다고 보면 된다. 21세기 대한민국은 여전히 아담 스미스 시대를 살고 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소서. 저들은 자기들이 하고 있는 일을 알지 못합니다.”

<누가복음 23:34>

여한(餘恨)

여한(餘恨)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바람은 오직 하나, 진상규명이었다. 왜 그 천사같은 수백 명의 아이들이 영문도 모른 채 차디찬 바다 속에서 죽어가야 했는지 부모들은 알아야 했다. 그들은 그 이유를 알기 위해 거리로 나섰고, 목숨을 건 단식을 했다. 물론 박근혜와 새누리당은 그 유족들의 바람을 외면했다. 유족들의 한은 깊어만 갔다.

박근혜는 석달 반 전에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유족들과 면담하면서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국민들께는 말씀을 드리겠지만 특별법은 필요하다 그렇게 봅니다. 특검도 해야 된다. 근본부터 잘못된 것은 바로 잡아야지 그냥 내버려두면 그게 또 그게 계속 자라가지고 언젠가 보면 또 부패가 퍼져 있고, 이렇게 돼서는 안 되지 않느냐, 그런 생각이다. 국정조사도 한다고 했고 수사도 하고 있으니 그런 모든 것이 차제에 또 부패방지법이 있지 않나. 그 부분도 강력하게 시행해야 된다, 통과시켜서. 그런 의지를 강하게 갖고 있다. 무엇보다 진상규명에 있어서 유족 여러분들이 여한이 없도록 하겠다. 오늘 다 얘기를 못하더라도 어떻게 하면 그 부분에 대해서 속 시원하게 여러분들에게 계속 반영이 되고, 투명하게 공개가 되냐 하는 것을 다시 의논을 드리겠다.

<세월호 靑대화록>③ “진상규명 유족들 여한없게 할것”

물론 거짓말이었다. 박근혜와 새누리당은 세월호 특별법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진상규명은 말할 것도 없고. 단지 코 앞에 닥친 지방선거와 보궐선거를 위한 립서비스가 필요했을뿐. 두 번의 선거가 지나가자, 그들은 유족들을 벌레 보듯 하기 시작했다.

기회주의자들의 특징 중 하나는 표리가 부동하다는 것이다. 겉과 속이 다르다. 필요할 때는 간이라도 빼줄 것 같지만, 막상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언제라도 뒷통수를 친다.

박근혜와 새누리당은 세월호 참사의 책임이 본인들에게 있다는 것을 안다. 그들의 무능과 무책임과 무대책이 만천하에 드러날 경우 정권 유지는 커녕 이 나라에서 살아남을 수 없음을 잘 안다. 그러니 그들의 책임을 밝히겠다는 수사와 진상규명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세월호 유족들의 한은 눈물이 되고 빗물이 되어, 오늘도 하염없이 내리고 있다. 민족의 최대 명절 한가위가 내일 모레 앞으로 다가왔지만, 그들은 오늘도 거리에서 단식을 하고 삼보일배를 하며 진상규명을 외치고 있다.

유족들의 여한은 한없이 커져만 갔다.

삼보일배

바벨탑 인 강남스타일

바벨탑 인 강남스타일

바벨탑은 인간들의 욕망의 정점을 상징하는 신화 속의 건축물이다. 인간이 신에게 대항할 수 있다는 교만은 하늘을 찌를 듯한 탑으로 형상화되었고, 이에 분노한 신은 인간들의 언어를 뒤섞어 탑의 건설을 중단시킨다. 이것이 창세기 11장에 나오는 바벨탑에 관한 신화다.

피테르 브뢰헬의 바벨탑

서울 잠실에 세워지고 있는 제2롯데월드는 자본과 권력의 결탁의 상징이자, 이 나라 지배계층의 탐욕의 정점을 보여주는 건물이다. (국가안보는 안중에도 없이) 성남공항 활주로 변경까지 해가며 건축 승인을 해준 이명박과 (아이들에게 껌을 팔아 돈을 번) 재일교포 재벌 신격호의 만남은 시작부터 이미 비극을 내재하고 있었다.

잠실 석촌호수의 물이 빠지고 주변 도로 곳곳이 침하되자, 사람들은 이것이 제2롯데월드와 관련 있는 것이 아니냐며 수근거렸다. 최근에는 잠실 공사장 부근에서 커다란 씽크홀(동공)들이 발견되었다. 서울시는 일단 그 동공들이 지하철 공사와 연관이 있다는 설명을 내놓았지만, 엄청난 규모의 건축과 지하철 공사 등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견고하지 않은 지반이 곳곳에서 내려앉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잠실 주민들은 불안하지만 집값이 떨어질까봐 쉬쉬한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집값이 중요한들 사람 목숨보다 소중할 수는 없는 법이다. 우리는 이미 삼풍백화점 붕괴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이미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는 증상들은 시작부터 내재된 비극의 실현을 예고하고 있다. 제2롯데월드는 강남의 바벨탑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탐욕의 끝은 파멸이다. 역사는 이러한 사실을 반복적으로 증명하고 있지만, 인간들은 불 속으로 뛰어드는 부나비처럼 오늘도 파멸의 수렁 속으로 달려가고 있다.

제2롯데월드

중립

중립

중립이란 말은 이론적으로는 성립할 수 있지만, 인간들이 사는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중간의 입장에 서겠다는 것만큼 비현실적이고 비겁한 것도 없다. 특히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히 구분되고, 피해자들이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 상황에서 중립을 말하는 자들은 가해자와 한편이거나 가해자보다 더 질이 좋지 않은 기회주의자들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월호 유족들의 고통 앞에 중립을 지킬 수 없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는 단순한 해상 교통사고가 아니다. 아무리 너그럽게 보아도 이것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집단살인이다. 300명이 넘는 죄없는 학생들과 시민들이 영문도 모른 채 수장되었고, 아직까지 시신도 못 찾은 가족들은 오늘도 진도항에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립을 얘기하거나 진상 규명을 방해하는 자들은 모두 가해자들이고, 공범들이다.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거나 위로하지 못하고 중립을 가장하여 가해자의 편에 서는 자들은 언젠가 그 고통을 고스란히 되받을 것이다. 그때서야 세상에는 중립이 없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약자의 편이고 빈자의 편이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편이었다. 그것이 사람들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공존

공존

수천 년을 디아스포라로 살며, 쇼아까지 겪은 유대인들은 그 고난과 박해의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것 같다. 히틀러는 600만명의 유대인을 학살했고, 유대인들은 수많은 팔레스타인들을 죽이고 있다. 나치가 저질렀던 만행을 이스라엘의 유대인들은 똑같이 되풀이하고 있다.

유대인들이 낳은 가장 위대한 인물인 예수는 이렇게 말했다.

다른 사람이 너희에게 해 주었으면 하는 대로, 너희가 다른 사람들에게 모두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내용이다.

So in everything, do to others what you would have them do to you, for this sums up the Law and the Prophets.

<마태복음 7:12>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유대인들과 팔레스타인들의 조상은 아브라함이고, 그들이 섬기는 신도 이름만 다를 뿐, 같은 신이다. 물론, 유대인들은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지만, 예수가 말한 황금률은 인간으로서 지녀야할 가장 기본적인 가르침이다.

유럽에서는 나치 이후 최악의 반유대주의가 꿈틀되고 있다.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다. 이제부터라도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공격을 멈추고 공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Palestinian-Loss-Of-Land-1946-2010

지금도 팔레스타인의 아이들과 여자들은 이스라엘의 공격에 피를 흘리고 있다. 그들의 평화를 위해 기도한다.

홍명보와 기대불일치 이론

홍명보와 기대불일치 이론

오늘 러시아와의 첫 경기에서 축구 국가대표팀은 예상 밖의 선전을 했다. 오랜만에 안정된 수비를 선보였고, 공격도 아주 활발한 것은 아니었지만 준비한대로 진행했다. 큰 점수차로 패배를 예상했던 많은 국민들과 언론의 호평이 쏟아졌다.

의도했던 하지 않았던 간에, 홍명보 감독은 평가전 연패를 통해 축구 국가대표팀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 수준을 한 없이 낮춰 놓았다. 대다수 국민들은 이번 브라질 월드컵 조예선에서 3패 또는 1무 2패로 예선 탈락을 예상했다.

마케팅에서 많이 회자되는 기대불일치 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소비자들은 어떤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있는데, 그 기대와 성과의 차이에 의해 소비자 만족도가 달라진다는 이론이다.

이번처럼 대표팀에 대한 기대가 낮거나 아예 없는 경우, 러시아와 대등한 경기를 펼쳐 비기면 대표팀에 찬사가 쏟아진다. 반면, 러시아 정도는 가볍게 이길 거라고 기대했을 경우, 같은 무승부 결과라고 하더라도 국민들은 대표팀을 비난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 경기 내용만을 보면, 홍명보는 보기보다 영리한 감독인 것 같다. 그가 평가전은 큰 비중을 두지 않고, 선수들의 몸상태를 월드컵 첫 경기에 맞추었다. 그가 기대불일치 이론에 기대어 이런 상황을 의도했다면, 그는 영리함을 넘어 영악한 감독이다.

하지만, 박주영에 이르러서는 홍명보의 영악함이 사라진다. 그는 박주영과 영혼의 교감을 나누는 사이인지도 모른다. 감독의 냉철함이나 객관적인 시각은 눈녹듯 사라지고 맹목적 믿음과 사랑만으로 박주영을 감싼다. 박주영을 국가대표로 선발하는 과정은 불공정했고, 지금까지 보여준 결과도 정의롭지 못했다.

다음 두 경기에서 홍명보의 냉철한 결단력을 기대해 본다. 물론 기대불일치 이론에 근거하여, 기대가 크면 실망도 커지기 마련이지만, 늘 그렇듯 피는 콜라보다 진한 것이까.

문창극의 참극과 “하나님의 뜻”

문창극의 참극과 “하나님의 뜻”

일본군 장교의 딸이자 남로당 군총책의 딸, 그리고 헌법유린 쿠데타 수괴의 딸인 박근혜가 국무총리 후보로 전직 언론인 출신인 듣보잡 문창극을 지명하였는데, 이 자의 과거 언행은 박근혜와 김기춘 일당을 기쁘게 하기에 충분한 바, 박근혜 정권의 총리로는 이보다 더 좋은 후보를 찾기에는 거의 불가능하다 할 것이고, 문창극이 지껄인 것처럼 일본의 식민지배와 남북분단이 모두 “하나님의 뜻”이었듯이, 문창극이 총리 후보로 지명되면서 본인이 게으르고 무지하다고 폄하하고 조롱했던 무지몽매한 조선반도 국민들로부터 여론의 뭇매를 맞게 된 것도 모두 “하나님의 뜻”일 것이고, 이런 쓰레기 같은 인간을 보수라고 한다면 이 땅의 보수라 불리는 모든 인간들도 도매금으로 쓰레기로 취급될 것이니 그것 또한 “하나님의 뜻”일 것이며, 이런 인간을 기독교 장로로 인정한다면 이 땅의 기독교인들도 개독이라 매도될 것이니 그것 또한 “하나님의 뜻”일 것인데, 문제는 문창극의 이런 쓰레기 같은 역사 인식이 비단 문창극 일인의 문제가 아니고 이 땅의 지배계급이란 불리는 친일 군부독재 기회주의 세력의 공통된 인식인 바, 그 자들은 아무런 죄의식도 느끼지 못할 뿐더러 어떤 선거든 묻지마 투표를 자행하는 30%의 자칭 어르신들을 볼모 삼아 앞으로도 시궁창 같은 주둥아리로 똥물보다 더 더러운 막말을 쏟아낼 것인데,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도 그 모습이 지극히 아름답지 못하여 벼락과 광풍과 폭우와 우박으로 저 부끄러움을 모르는 탐욕스러운 족속들을 벌하고자 하시었으나,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 하나님 본인조차 헷갈리시어서, 오늘도 이 땅의 참극은 계속될지어다. 아멘.

세월호 공범 되기

세월호 공범 되기

세월호 침몰을 언론에서는 “세월호 참사”라고 말하지만, 사실 이것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세월호 침몰로 죽은 꽃다운 아이들과 무고한 시민들은 집단 살해된 것이라고 봐야 한다. 배가 침몰할 당시, 구조할 시간이 충분했음에도 선장과 선원과 해경과 정부는 사람들을 구조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 사건은 충격적이다.

1차적인 책임은 위급 상황에서 아무런 조처도 하지 않고 먼저 빠져나온 선장과 선원들이 져야 할 것이고, 그런 사태를 불러온 청해진해운도 1차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재난 상황에서 국민들의 안전에 책임져야 할 정부와 해경도 역시 1차적 책임자이다.

세월호 침몰의 씨앗은 이미 2008년도에 잉태되었다. 이명박 정권이 돈 몇 푼 아끼겠다고 “규제완화”란 미명 하에, 해운법을 변경하여 선령제한을 20년에서 30년으로 완화한 것이다. 이런 “규제 완화”로 인해 청해진해운처럼 부도덕한 기업이 2012년 일본에서 퇴역한 배를 사들여 구조를 변경했고, 단지 돈만 벌기 위해 위험한 항해를 계속했던 것이다.

물론, 그 당시 법을 변경할 때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는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몰랐다고 책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부도덕한 정부와 부도덕한 기업 등 이 땅의 지배세력은 기본적으로 국민의 생명보다는 자기들의 권력과 돈을 추구하는 족속들이니까.

이명박과 박근혜가 박정희, 전두환과 본질적으로 다르진 않지만, 그들은 박정희, 전두환처럼 쿠데타로 집권하지 않았다. 국민들의 투표에 의해 선출된 권력이다. (물론, 박근혜의 경우에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되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결정적 증거가 나온 것은 없다.) 결국 국민들의 의해 선출된 권력에 의해 이런 비극이 벌어질 환경이 조성되고, 이런 환경에서 권력의 비호를 받는 부도덕한 기업들이 돈을 벌기 위해 이런 짓을 서슴없이 벌인다.

이명박, 박근혜를 찍었던 사람들은 이 비극에 대해 일말의 책임을 느껴야 한다.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간 꽃다운 아이들에게 미안함을 느껴야 한다. 그들은 이렇게 변명할지도 모른다. 이명박, 박근혜를 찍을 때는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고. 그래, 그때는 몰랐다고 치자. 몰라서 그랬다고 하자. 이제 눈앞에서 300여 명이 수장되는 것을 목격했으니,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상황에서도 새누리당을 계속 찍는 사람들은 본인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세월호 비극의 공범이 되는 것이다. 새누리당이 계속 집권하는 한, 세월호의 진상은 밝혀지지 않는다. 300여 명의 희생자들의 넋을 달랠 수도 없다. 아니 앞으로 이런 사건이 계속 일어날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연관되어 있다. 세월호 참사는 이 땅의 모든 탐욕이 만들어낸 상징적인 비극이다. 먼저 간 아이들에게 일말의 미안함이 있다면, 그들의 넋을 달래길 바란다면, 말로만 할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선택을 해야 한다.

세월호의 공범이 될 것인가?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고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고

지난 번 천안함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도 관계 당국은 각종 의혹에 대해 단 한 번도 명쾌한 해명을 한 적이 없다. 결정적 증거들은 공개되지 않거나 변조되었고, 관련자들의 증언은 엇갈리며, 말도 안 되는 변명만이 난무할 뿐이다.

김어준의 합리적 의심에 근거한 추론은 (비록 그가 소설이기를 바라기는 했지만,) 현재 상황을 설명하는데 해경의 변명보다 훨씬 근거 있고 타당해 보인다.

지금까지 밝혀진 것을 종합해보면, 학생 250여명을 포함한 300명이 넘는 사람들은 충분히 구조될 수 있는 상황에서 구조되지 못하고 희생되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세월호 침몰은 단순한 선박 사고가 아니고, 학살에 가까운 살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천안함 때의 희생자들은 군인들이었고, 유가족들을 금품으로 회유하였으며, 전가의 보도 북한산 파란 매직 1번 어뢰로 사건을 덮을 수 있었던 정부가 이번에는 어떤 상상력과 거짓말을 동원하여 이 사건을 무마할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과연 꽃보다도 아름다웠던 그 학생들의 죽음을 돈으로 회유할 수 있을까? 이번에는 북한산 어뢰 핑계도 댈 수 없는데 과연 색깔론이나 종북론으로 입막음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면 그들의 선택은 무엇일까? 아마도 이 세월호 사건을 덮을만한 더 큰 사건을 일으키는 것이 아닐까?

그들은 권력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서슴지 않는 자들이기 때문에, 무엇이든 아마 상상 그 이상이 될 것 같다.

갑오년

갑오년

지금부터 120년 전, 그러니까 1894년 갑오년에 녹두장군 전봉준은 동학농민혁명을 일으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가 의(義)를 들어 여기에 이르렀음은 그 본의가 결코 다른 데 있지 아니하고, 창생을 도탄 중에서 건지고 국가를 반석 위에다 두자 함이라. 안으로는 탐학한 관리의 머리를 베고, 밖으로는 횡포한 강적의 무리를 쫓아 내몰고자 함이라. 양반과 부호 앞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민중들과 방백과 수령의 밑에서 굴욕을 받고 있는 소리(小吏)들은 우리와 같이 원한이 깊은 자이라. 조금도 주저하지 말고 이 시각으로 일어서라. 만일, 기회를 잃으면 후회하여도 미치지 못하리라.

120년이 흘렀어도 창생은 여전히 도탄에 빠져있고, 민중들은 친일반민족 군부독재의 무리들에게 고통받고 있다.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이들은 끊임없이 죽임을 당했다. 전봉준도 그랬고, 5년 전 노무현도 그랬다. 봉건제는 사라졌으나, 많은 민중들은 여전히 독재자의 딸에게 머리를 조아린다. 기회주의자들은 1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