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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y: Thoughts

헬조선, 과연 누구 책임인가

헬조선, 과연 누구 책임인가

유명 대학 교수들이 페이스북에서 헬조선에 대한 논쟁을 벌인 모양이다. 한 교수는 이 나라를 헬조선이라고 빈정대는 청년 세대를 철이 없다고 꾸짖었고, 다른 교수는 청년 세대의 절망을 이해하지 못하는 기성 세대의 오만이라고 맞받았다. 하지만, 헬조선 문제를 세대 대결로 치환하는 것은 논점이 벗어난 것일 뿐만 아니라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헬조선은 세대의 문제가 아니고, 계급의 문제이고 사회 구조의 문제임을 알아야 이 논쟁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다.

우선 청년들이 주장하는 대로 이 나라는 헬조선인가? 이 땅의 대다수 청년들은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이 나라는 정의롭지 못하다. 열심히 일한 사람들이 잘살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대다수 청년들에게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개인의 노력으로 넘을 수 없는 견고한 벽이 있다. 헌법 상으로는 모든 사람이 평등한 민주공화국이지만, 사실은 신분제나 계급제 국가라고 봐야 한다. 그래도 이전 세대에서는 어느 정도의 신분 상승이 허용되었으나, 이미 개천에서 용나는 시대는 지났다. 희망이 없는 사회, 청년이 신음하는 사회, 아이 낳기를 꺼리는 사회는 분명 헬조선에 가깝다.

왜 이렇게 되었나? 해방 이후 첫단추를 잘못 꿰었다. 단죄되어야 할 친일파들이 권력을 장악하면서 모든 일이 꼬였다. 그 이후 수십 년간 (소위 산업화 세력이라 불리는) 군부 독재가 들어서면서 친일파와 독재 부역 세력이 명실상부한 지배 세력이 되었다. 이들이 재벌, 언론과 결탁하여 반칙과 특권으로 자신들의 계급을 만들어갔다. 이들은 보수세력이 아니다. 이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눈앞의 이익만을 좇는 기회주의 세력일 뿐이다. 이 나라에서는 당연히 상식과 원칙이 통하지 않았다.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탄압을 받거나 죽임을 당했다. 대다수 국민들은 개, 돼지 취급을 당했다.

청년들은 자신의 부모 세대나 할아버지 세대를 비난하지 않는다. 설령 그들이 기성 세대를 욕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오히려 기성 세대는 청년들에게 미안해 해야 한다. 한 줌도 안 되는 친일과 독재 부역 세력들이 자신들의 특권을 지키기 위해 이 나라를 헬조선으로 만들었다. 기성 세대의 잘못은 이런 기회주의 지배 계급을 타파하지 못하고 그들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세뇌당한 것이다. 따라서 계급의 틀은 나날이 공공해진다. 성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 연대나 협력은 개나 줘버려야 한다. 중고등학교에서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 대학에서는 좋은 직장을 잡기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한다. 그런 인간들만이 지배 계급에 들어갈 자격이 생긴다.

그렇다면 정말 희망이 없는 것인가? 두 번의 정권 교체를 경험하면서 일말의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노무현의 가치가 문재인 정부로 이어지면서 조금씩 정의로운 나라에 다가서고 있다. 헬조선을 만든 건 기성 세대지만,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은 청년들의 몫이 되었다. 청년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면 그 희망은 점점 커질 것이다.

지배 계급은 몹시 견고하다. 행정부만을 제외하고 이 나라의 거의 모든 상부구조를 장악하고 있다. 이 구조를 타파하지 않고는 해피조선은 가능하지 않다. 시간이 꽤 걸리겠지만, 불가능하지 않다. 청년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그리고 그 청년들이 기성 세대가 되었을 때 자식들에게 자랑스럽게 얘기하라. 예전에는 헬조선이었지만, 지금은 해피조선이라고. 청년들의 건투를 빈다.

대통령을 가장 잘할 사람

대통령을 가장 잘할 사람

현재 우리나라 정치인 중 대통령을 가장 잘할 사람은 누구일까? 정답 문재인. 가장 대통령을 잘할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아 놓았으니 당분간 이 나라의 걱정거리는 많이 줄었다.

오늘 국정운영 100대 과제 발표를 보면서, 문재인 정부가 전 세계에서 가장 유능한 정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발표의 내용과 형식이 최고 수준이고, 지난 2달 동안 이 일을 진행한 사람들의 면면이 훌륭하다. 믿음직스럽다.

문재인 대통령은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대통령을 보좌하면서 5년간 국정을 경험했다. 경험으로 봐도 그를 따라올 사람이 없다. 그는 명석한 두뇌와 따뜻한 가슴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우월한 외모까지 겸비했다. 그의 유일한 약점은 권력의지가 없다는 것이었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후 노무현의 운명을 본인의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공과 사의 구분이 명확하고, 원칙을 끝까지 지키며, 리더로서의 무한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이다. 늘 사람을 중심으로 생각하며, 우리 사회 약자 편에 서서 일을 한다. 품성으로 봐도 그를 따라올 사람이 없다.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는 것은 이 나라의 복이다.

10년 전쯤 노무현 대통령은 오늘 발표와 비슷한 형식의 연설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노무현 대통령 혼자 모든 것을 감당하던 때였다. 사방이 적이었고, 노무현은 너무나 많은 오해와 핍박을 받던 시절이었다. 연설의 달인이었던 노무현조차 버거워했던 연설이었다.

오늘 문재인 정부는 정말 세련되고 근사했다. 그리고 여유로웠다. 10년 전의 당황하던 노무현이 있었기에 오늘 이렇게 유능한 문재인 정부가 탄생한 것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민주 세력이 집권 경험을 쌓아 가면서 이제는 도덕성뿐만 아니라 능력으로도 기회주의 세력을 압도하고 있다. 내년 지방 선거, 그 이후 총선을 통해 지방 권력과 의회 권력마저 가져온다면, 이 나라의 미래를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오늘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 발표를 보았다면, “이야, 기분 좋다!”고 했을 것 같다. 그가 많이 보고 싶다.

비용을 말하는 자들에게

비용을 말하는 자들에게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지 겨우 5일 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온나라가 순식간에 정상궤도를 찾아간다. 마치 못된 마법사의 주술에서 빠져나온 듯 동화같은 얘기들이 펼쳐져서, 지난 5일 동안 벌어진 일들이 무척이나 낯설고 초현실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사이다 같은 지시 한마디에 국정교과서는 폐지되고, 임을 위한 행진곡은 518 광주항쟁 기념식에서 제대로 불려지게 되었다. 인천공항의 1만여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될 예정이고, 세월호 참사 때 세상을 떠난 기간제 선생님들의 순직이 인정받게 되었다. 지극히 당연한 상식이 상식으로 인정받지 못하던 지난 9년 동안 세상은 황폐했고 소모적이었으며 잿빛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공기관 비정규직 제로 정책을 펴겠다고 하니, 어떤 이들은 누가 그게 좋은 줄 몰라서 못했냐고, 돈이 없어서 못했다고 비아냥거린다. 공공기관 비정규직 노동자 모두를 비정규직으로 전환하려면 5년간 4조원의 돈이 든다고 훈계한다. 물론 돈이 들것이고, 그것도 많은 돈이 들것이다.

어떤 일을 하려고 하면 항상 예산이나 비용부터 꺼내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하기 어렵다고 주장하지만, 속내는 그 일이 하기 싫은 거다. 어떡해서든 해야 할 일이라면 예산이나 비용은 부차적인 문제다. “돈 문제”는 큰 문제가 아니며,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이명박이 5년 동안 해먹은 국민 세금이 189조원이다. 4대강 강바닥 파는데만 22조원의 세금이 들어갔다. 왜 그들은 이런 천문학적인 세금 낭비에는 일언반구 말이 없다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바꾸는데 드는 비용 4조원에는 그렇게 인색한 것일까. 돈이 없어서 못하는 게 아니고, 그들은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연간 400조의 예산을 가진 나라에서 5년간 4조원의 돈은 큰 문제가 아니다. 189조의 세금을 날리고도 나라가 망하지 않은 것을 보면 말이다. 문제는 의지다. 더 나은 세상은 가능하다는 의지. 그런 의지로 충만한 문재인 대통령이 있어 정말 다행이다.

홍준표가 남자인 것을 반대합니다

홍준표가 남자인 것을 반대합니다

“동성애를 반대합니까?” 홍준표가 물었다. 그 질문은 문재인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한 속임수였다. 갑작스런 동성애 질문에 문재인이 제법 선방하긴 했지만, 이건 질문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것이다. 동성애는 성적 취향과 지향의 문제다. 다른 사람의 (선천적) 취향을 찬성 또는 반대하겠다는 발상은 말이 안 된다. 동성애를 좋아하거나 싫어할 수는 있지만, 찬성하거나 반대할 수는 없다.

동성애를 반대할 수 있다면, 이성애도 반대할 수 있어야 하고, 당신이 남자 또는 여자인 것도 반대할 수 있어야 한다. “홍준표가 남자인 것을 반대합니다.” “홍준표가 이성애자인 것을 반대합니다.” 이런 주장이 말이 되는가? 홍준표가 남자로 태어나고 싶어 태어났는가? 태어나 보니 남자였는데, 어쩌라구? 남자보다 여자를 더 좋아하는데, 반대한다면 어쩌라구?

동성혼의 합법화는 찬성 또는 반대할 수 있다. 결혼이라는 사회 제도를 이성 간으로 한정할 것인지 아니면 동성 간으로 확대할 것인지의 문제다. 어떤 사람들은 굳이 결혼이라는 제도가 필요한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이 땅의 진보세력들이 기억해야할 것이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아직 동성혼을 합법화하거나 아니 최소한 공론화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일제에서 해방된 지 7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친일파조차 단죄하지 못한 나라다. 친일과 독재의 부역세력들이 거의 모든 권력을 잡고 있는 나라다. 이 세력들을 권력에서 제거하지 못하면 진보의 미래는 없다. 그렇기에 정권교체가 먼저다.

진보세력은 조급함을 떨쳐야 한다. 문재인의 성공을 이용하여 서서히 주류로 진입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참여정부 때처럼 수구세력과 한패가 되어 문재인을 공격한다면 그것은 진보가 진보하지 못하고 퇴보하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진보의 현명한 전진을 기대해 본다.

대통령의 언어

대통령의 언어

“주적을 주적이라 부르지 못하는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을 수 있습니까?”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의 통쾌한 일격이다. 따라쟁이 안철수 후보도 “지금은 남북대치 국면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주적이다”라고 말했다. 훌륭한 뒷북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승민이나 안철수는 대통령이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 북한을 주적이라 얘기하는 것은 쉽다. 국방부 장관이나 군의 장성들이 북한군을 주적으로 삼는 것은 당연하다. 북한과 전쟁이나 전투가 일어나면 싸워서 이겨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군인은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궁극적 목표이지만, 대통령은 이 나라 백성들의 삶에 대해 무한책임을 져야 하는 지도자이다. 따라서 그 책임의 정도가 국방부 장관이나 장성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대통령은 주적임을 알지만 주적이라 말하지 않아야 하고, 때로는 당장 전쟁이라도 해서 저들을 쓸어 버리고 싶지만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다른 나라 전쟁에 파병을 하고 싶지 않지만 파병해야 하는 결정도 직면한다. 그렇게 쉽게 말하고 그렇게 쉽게 결정하는 자리가 아니다. 왜냐하면 5천만 국민의 목숨을 책임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통령의 언어는 신중하고 무거워야 한다.

전쟁을 하자고 쉽게 내뱉는 족속들의 전제는 그 전쟁이 자신과 무관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다른 나라들을 쉽게 공격할 수 있는 이유는 남북전쟁 이후 미국 본토에서 한 번도 현대전이 일어나지 않아 전쟁의 참상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적이나 전쟁이 아니라 평화와 공존이다. 물론 통일까지 가면 더 좋겠지만, 그것은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북한의 김정은, 미국의 트럼프, 중국의 시진핑, 그리고 일본의 아베 등 이런 부류의 사람들 속에서 한반도 평화와 공존, 번영을 이루어낼 실력있는 지도자가 우리에겐 절실하다. 그것은 우리의 생존과도 직결된 문제이다.

손자병법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是故百戰百勝, 非善之善者也, 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者也.

이런 까닭에 백번 싸워 백번 모두 이기는 것은 최상의 방법이 아니다.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다.

우리에게는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킬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그래서 이번 대통령 선거가 중요하다.

문재인에게서 그런 지도자를 본다. 문재인은 김대중, 노무현에 이어 대한민국의 사실상 세번째 대통령이 될 것이고, 우리는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이다.

안철수의 진심, 상황이 바뀌면 입장이 바뀐다

안철수의 진심, 상황이 바뀌면 입장이 바뀐다

“상황이 바뀌면 입장이 바뀌는 게 당연하지 않습니까?”

관훈토론회에서 안철수가 사드 배치에 반대하다가 찬성으로 돌아선 이유를 이렇게 얘기했다. 이것은 안철수의 진심이다. 물론 북핵 문제를 둘러싼 외교 상황이 바뀌지는 않았다. 이 나라 기득권층을 지켜야 하는 대표 선수로서의 본인 상황이 바뀌었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드 배치를 국민 투표로 정해야 한다고 강경하게 말하던 자가 하루아침에 손바닥을 뒤집는다. “상황이 바뀌었다”라고.

상황은 끊임없이 바뀔 것이고, 안철수의 입장은 시시각각 변할 것이다. 변하지 않는 건 그가 기회주의자라는 사실뿐이다. 안철수는 이 나라 특권 지배계층의 구원투수로 낙점된 사람이다. 모든 언론이 문재인 죽이기에 앞장서면서 안철수를 띄우고 있다. 따라서 이번 대선은 겉으로는 문재인과 안철수의 대결이지만, 본질은 깨어있는 시민과 한 줌도 안 되는 기회주의 특권층의 대결이다.

한국 언론은 세월호 선내 방송

한국 언론은 세월호 선내 방송

“현재 위치에서 안전하게 기다리시고 더 이상 밖으로 나오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방송이 나올 때,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은 황급히 해경의 경비정으로 탈출하고 있었다. 이 방송만 아니었어도 훨씬 더 많은 학생과 시민들이 살 수 있었다. 아니, 승객들을 제대로 안내하는 방송만 했어도 거의 모든 승객이 구조될 수 있었다. 세월호 참사는 단순한 사고가 아니다. 뭔가 의도가 있지 않고는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 국민의당 경선이 시작될 무렵, 거의 모든 언론이 안철수 띄우기에 나섰다. 공중파와 조중동, 종편뿐만 아니라 소위 진보언론이라 알려진 한경오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모든 기득권 세력들의 이해관계가 일치한다. 어떡해서든 문재인 당선만은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예상 못했던 바는 아니지만, 그 정도가 너무 심하다. 99%의 언론이 대동단결하여 문재인 죽이기를 하고 있다. 일사분란하다. 그만큼 그들은 절박하다.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면 정말 적폐가 청산될 것이기 때문이다. 친일과 독재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이 나라의 지배계급에 치명타가 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초조하다. 그들은 세월호 참사 때의 선내 방송처럼 국민들의 눈과 귀를 호도하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조작되고 왜곡된 여론조사로 문재인과 안철수의 양자대결을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만약 유권자들이 이런 언론에 또다시 속는다면, 이 나라는 세월호처럼 침몰할 것이고, 대다수 국민들은 영원히 지배계급의 개, 돼지로 살아갈 것이다. 촛불민심은 정권교체이고, 그것을 제대로 해낼 수 있는 사람은 문재인이다. 지금 이 나라의 언론들은 세월호의 선내 방송처럼 국민들에게 “가만히 있으라”라고 한다. 세월호 참사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한국 언론은 민중의 적이다. 그들을 믿지 마라.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다 (2)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다 (2)

아주 오랜만에, 햇수로는 8년만에, 꿈속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보았다.

꿈에서 그는 다시 대통령에 출마해서 당선되었고, 보좌관들에 둘러쌓여 취임식에 가려고 건물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그 모습을 건물 안쪽에서 유리창을 통해 지켜보다가 감격에 겨워 울면서 만세를 불렀다.

“대통령님, 만세! 만세! 만세!”

노무현 대통령이 그 만세 소리를 들었는지, 가던 길을 멈추고 유리창 안을 들여다 보았다. 그런데 유리창이 흐릿하여 안쪽이 잘 보이지 않아 그가 연신 두리번거렸다. 그가 건물 안에 누가 있는지 알아보지 못해 안타까워 하다 잠을 깼다.

꿈에서 그를 다시 보았다는 것만으로도 흥분이 되어 다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 꿈이 문재인 대통령 당선의 전조일까? 그렇게 되기를 노무현 대통령도 간절히 바랄 것이다.

문재인, 그가 있어 다행이다

문재인, 그가 있어 다행이다

이명박, 박근혜 9년. 나라는 시궁창에 쳐박혔다. 모든 것은 예견된 일이었고, 그 슬픈 예견은 한치도 틀리지 않았다. 이명박은 사악하고 교묘했고, 박근혜는 무지하고 탐욕스러웠다. 불의가 판치고, 반칙과 특권이 난무하고, 불평등은 깊을대로 깊어졌다. 모든 희망이 사라지고, 절망의 깃발만 나부꼈다. 노무현, 김대중 대통령마저 세상을 떠나 아무런 버팀목이 없었다. 어둠이 깊어지고 터널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하늘은 이 나라를 버리지 않았다. 그 깊은 어둠 속에서 한줌의 빛을 보여주는 사람이 있었다. 절망의 나락 속에서 나지막이 희망의 노래를 부르는 이가 있었다. 김대중의 철학과 노무현의 원칙을 부여잡고, 자유와 민주와 평화가 넘치는 나라를 만들어보자고 외치는 사람이 있었다.

문재인! 그가 문재인이라 다행이다. 문재인이 있어 정말 다행이다.

어눌하지만 세련되고, 부드럽지만 강단있고, 잘생겼지만 순박한 사람. 정치인같지 않지만 정치를 해야만 하는 운명을 지닌 사람. 끝내 다 이루지 못한 노무현의 꿈을 이어받은 사람. 그 사람이 문재인이라 다행이다.

감히 말하지만, 문재인은 정치인 중 가장 완성된 인격을 지닌 사람이다. 그처럼 품격있는 사람이 정치를 한다는 것 자체가 하늘이 이 나라를 버리지 않았다는 증거다. 때문에 문재인을 정치판으로 불러낸 이명박이 고마울 때도 있다.

오늘 문재인이 국민과 함께 19대 대통령 선거 출마 선언을 했다. 그가 국민과 함께 세상을 바꾸고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 나가리라 믿는다. 그가 압도적으로 19대 대통령에 당선될 것이라 믿는다. 그가 김대중과 노무현의 뒤를 이어 민주정부 3기를 성공적으로 이끌거라 믿는다. 이 나라에 자유와 정의와 평화가 젖과 꿀처럼 흐르길 바란다.

문재인, 그가 있어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문재인의 국민이 되고 싶다.

헌재의 상상력

헌재의 상상력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본래 정치적이다. 헌재는 형식 상으로는 어떤 법률이 헌법에 위배되는지를 판결하는 곳이다. 하지만 헌법은 원칙과 틀만을 제공하기 때문에 판결은 재판관의 해석에 따르게 되어 있다. 헌재 재판관들의 헌법 해석은 그들의 가치관이나 세계관에 따라 결정된다. 그러므로 같은 사안을 놓고도 재판관의 성향에 따라 전혀 다른 판결이 나오게 된다.

우리나라 헌재는 창의적인 상상력으로 꽤 유명한 판결을 내려 왔다. 대표적인 것이 2004년 행정수도 이전에 관한 법률이 위헌이라는 판결이다. 헌재 재판관 대다수가 관습헌법을 들먹이며 수도를 옮기려면 헌법을 고쳐야 한다고 판결했다. 성문헌법을 따르는 나라에서 헌법 조항에도 없는 사항을 어떻게 수정할 수 있을까? 사실 그들은 스스로 헌법 조항을 만들어 수도 이전을 반대했던 것이다. 그 당시 전효숙 재판관만이 유일하게 상식에 맞는 의견을 냈다.

2014년 통합진보당 해산 판결도 마찬가지다. 이석기 전 의원을 변명하고 싶은 생각은 없으나, 그의 내란음모 혐의는 대법원에서 무죄로 판명되었다. 헌재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오기 전에 1심의 판결만을 바탕으로 국민의 지지를 받은 정당을 해산한다. 그들의 정치적 색깔을 과감하게 드러낸 것이다. 이때도 김이수 재판관만이 유일하게 반대 의견을 냈다.

2008년 종부세 위헌 판결도 역사에 남을만한 것이다. 물론 헌재 재판관 대다수가 종부세 대상자였으니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들은 그들의 가치관, 정치관뿐만 아니라 이해 관계에 따라서도 판결을 해왔던 것이다.

헌재 재판관들 중 몇몇은 이번 박근혜 탄핵 사건도 기각해 버리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을 것이다. 관습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은 왕인데, 어디 무지렁이 백성들이 왕을 쫓아내려고 한단 말인가. 기각하고 싶은데 워낙 증거가 뚜렷해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할 것이다. 이번에는 어떤 이유를 들어 탄핵을 기각하려 할까? 박근혜 뇌물죄에 대해 다툼의 여지가 있으니 탄핵은 안 된다고 할까? 특검이 박근혜를 직접 조사하지 않았으니 혐의를 인정할 수 없다고 할까? 아니면 대통령은 왕이니까 원래 탄핵할 수 없다고 할까?

그들의 창의성과 상상력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