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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쳐도 가르침이 없는 경지

가르쳐도 가르침이 없는 경지

“수보리여 어찌 생각하는가? 너희는 여래가‘내가 마땅히 중생을 제도하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하지 말라. 수보리여, 이렇게 생각하지 말라. 왜냐하면, 여래가 제도한 중생이 실제로 없기 때문이다. 만일 여래가 제도한 중생이 있다고 하면, 곧 여래에게도 자아, 개아, 중생, 영혼이 있다는 집착이 있는 것이다. 수보리여, 자아가 있다는 집착은 자아가 있다는 집착이 아니라고 여래는 말한다. 그렇지만 보통 사람들은 자아가 있다고 집착한다. 수보리여, 보통 사람들이란 것도 여래가 말하기를 곧 보통 사람들이 아니요, 그 이름만 보통 사람들이라 불린다고 한다.”

須菩提, 於意云何? 汝等勿謂如來作是念, 『我當度衆生。』 須菩提, 莫作是念。 何以故? 實無有衆生如來度者。 若有衆生如來度者, 如來則有我人衆生壽者。 須菩提, 如來說, 『有我者, 即非有我, 而凡夫之人以為有我。』 須菩提, 凡夫者, 如來說即非凡夫, 是名凡夫。

<金剛般若波羅蜜經 第二十五 化無所化分>

금강경 제25 화무소화분. 가르쳐도 가르침이 없는 경지, 그 경지가 과연 가능할 것인가.

은퇴한 남자들이 절망에 빠지는 이유

은퇴한 남자들이 절망에 빠지는 이유

나이가 들수록, 직업과 소명을 명확하게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많은 노인, 특히 남자들이 퇴직 이후 절망에 빠지는데, 이는 주요 수입원만이 아니라 (그중 많은 이가 아르바이트나 최저임금을 받는 다른 직업을 찾는다), 정체성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밥벌이를 위한 직업이 있었지만,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소명, 즉 사람이 죽을 때까지 추구할 수 있는 소명이 없었다.

<파커 파머,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 글항아리, 2018, p. 122>
마을공동체의 30가지 특징

마을공동체의 30가지 특징

  1. 사람들이 행복하고, 웃음이 많다.
  2. 불안감이 없다. 특히 노후 불안이 없다.
  3.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큰 집, 고급 차, 가방 등 사치품에 집착하지 않는다.
  4. 아이들을 닦달하지 않고 풀어놓으니 아이들의 천국이다.
  5. 남녀가 평등하다. 오히려 여성이 주도하는 경향이 강하다.
  6. 즐거운 모임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늘 함께 식사를 하거나, 파티가 이어진다.
  7. 스마트폰이나 텔레비전을 보는 시간이 적다.
  8. 상처를 치유하도록 돕는다. 고민과 아픔을 터놓을 사람이 늘 곁에 있다.
  9. 외롭지 않다. 외롭게 두지 않는다.
  10. 삶과 이상이 함께한다. 이상은 이상이고, 삶은 삶일 뿐이라는 이중성이 없다.
  11. 갈등을 방치하지 않고, 푸는 방법을 가지고 있다.
  12. 자발적으로 즐겁게 일하는 분위기다. 일 중심이 아니고 인간 중심이다.
  13. 병자와 노인과 장애인을 잘 돌본다. 아플 때 돌봐주고, 병원에 데려가줄 사람이 있다.
  14. 어른과 아이들 사이 세대 간 소통이 잘된다.
  15. 외부인에게 열려 있다. 일반 가정보다 외부인을 잘 초청한다.
  16. 시댁과 처가 식구들과 벽이 없다.
  17. 사고나 사건에 휘말렸을 때 내 일처럼 걱정해주고 도와준다.
  18. 밥상이 풍성하다. 친환경 먹거리를 먹는다.
  19. 깊은 대화를 한다. 피상적인 이야기에 머무르지 않고 속내를 터놓으며 고백하고 경청한다.
  20. 삶의 지혜가 공유된다.
  21. 육아 부담이 없다.
  22. 스펙에 집착하지 않는다.
  23. 저비용 고효율이다. 돈이 적게 든다.
  24. 나눔이 일상화되어 있다.
  25. 신경정신과가 필요 없다.
  26. 왕따와 소외된 사람이 없다.
  27. 공부 잘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 아니라 헌신적이고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이 존경받는다.
  28. 자연이 아름답다.
  29. 동물도 행복하다.
  30. 가족끼리 많은 시간을 함께한다.

<조현, 우린 다르게 살기로 했다, 휴, 2018>

천국에 가기 위해

천국에 가기 위해

“천국에 가기 위해 그대는 이 생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경전에 적힌 613가지 선행을 실천하겠습니다!”

“그 613가지 선행을 실천하는 길이 무엇인가?”

갑작스러운 질문에 이체크는 대답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선지자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시장에서 노래하는 눈먼 거지는 천사일지도 모른다네. 그리고 그대의 아내는 인생의 수수께끼를 풀 열쇠를 갖고 있을 수도 있어. 신의 계율을 압축하면 이것이라네. 지금 이 순간 눈앞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고, 지금 이 순간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하게.

<류시화, 인생 우화, 연금술사, pp. 266-267>

불평등이 필요한 이유

불평등이 필요한 이유

일률적인 부의 증가는 계층적 사회의 파괴를 초래할 위험을 안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적게 일하고 배불리 먹으며 목욕탕과 냉장고가 있는 집에서 자동차와 비행기까지 소유하고 산다면, 사회의 핵심을 이루는 불평등의 구조는 틀림없이 붕괴되고 말 것이다. 만약 부가 일반적인 것이 되면 차별이란 있을 수 없다. 물론 개인적 소유와 사치라는 의미에서 부가 공평히 분배되는 한편으로 권력이 소수 특권계급에 의해 장악되는 사회를 상상할 수는 있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사회는 오랫동안 안정을 유지할 수 없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시간적 여유와 함께 경제적 안정을 똑같이 누리게 되면 빈곤에 허덕인 나머지 사회에 무관심했던 대중이 마침내 눈을 뜨게 되고, 또 자신들의 처지를 생각하게 되면서 결국은 소수의 특권층이 존재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음을 깨닫게 됨으로써 그들을 몰아내려고 하기 때문이다.결과적으로 계층 사회의 장기적인 존속은 가난과 무지를 전제로 할 때만 가능하다.

<조지 오웰, 1984, 민음사, p. 267>

단순하게 살고 싶다

단순하게 살고 싶다

나는 단순하게 살고 싶다.
비가 내릴 때 창가에 앉아
시험 치지 않을 책을 읽고 싶다.
무언가를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원해서 그림을 그리고 싶다.
내 몸에 귀를 기울이고 싶고
달이 높이 떠올랐을 때 잠들어
천천히 일어나고 싶다.
급히 달려갈 곳도 없이.
나는 인류가 스스로 부과한
돈과 시간, 혹은 어떤 인위적인 제한들에 의해
지배받고 싶지 않다.
나는 그저 존재하고 싶다.
경계 없이, 무한하게.

I want to live simply.
I want to sit by the window when it rains
and read books I’ll never be tested on.
I want to paint because I want to,
not because I’ve got something to prove.
I want to listen to my body,
fall asleep when the moon is high and wake up slowly,
with no place to rush off to.
I want not to be governed by money or clocks
or any of the artificial restraints
that humanity imposes on itself.
I just want to be, boundless and infinite.

<류시화, 시로 납치하다 중에서>

차이와 존중

차이와 존중

말똥구리는 스스로 말똥 굴리기를 좋아할 뿐 용의 여의주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용 또한 여의주를 자랑하거나 뽐내면서 저 말똥구리의 말똥을 비웃지 않는다.

螗琅 自愛滚丸 不羡驪龍之如意珠 驪龍 亦不以如意珠 自矜驕而笑彼蜋丸.

<이덕무, 선귤당농소>

모두가 말똥구리일 수 없듯이 모두가 용이 될 수도 없다. 분명한 것은 모두가 저마다의 고유한 가치를 지니고 있고, 그 가치는 비교될 수 없다. 다를 뿐이고 그 다름은 온전히 존중되어야 한다. 그것이 자연의 섭리이다.

살다 보면

살다 보면

살다 보면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지요. 다 우리가 겪어내야 하는 일들입니다. 나의 삶을 돌아보니 하루 일과를 돌아본 것 같은 기분입니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잘 마쳤고 내가 이룬 것에 만족합니다. 나는 행복했고, 만족했으며, 이보다 더 좋은 삶을 알지 못합니다.

삶이 내게 준 것들로 나는 최고의 삶을 만들었어요. 결국 삶이란 우리 스스로 만드는 것이니까요. 언제나 그래왔고, 또 언제까지나 그럴 겁니다.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수오서재, 2017, p. 275>

76세에 그림을 시작하여 101세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1600여 점의 그림을 남긴 모지스 할머니. 할머니의 그림은 따뜻하고 잔잔하며 예쁘다. 그리고 사랑과 위로를 담고 있다. 책의 제목대로 인생에서 늦은 때란 없다. 다른 이들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도 없다. 성공할 이유도 없다.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그냥 지금 하면 된다.

사람들은 내게 이미 늦었다고 말하곤 했어요. 하지만 지금이 가장 고마워해야 할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무엇인가를 진정으로 꿈꾸는 사람에겐 바로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젊은 때이거든요. 시작하기에 딱 좋은 때 말이에요.

유발 하라리의 세 가지 질문

유발 하라리의 세 가지 질문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는 뛰어난 이야기꾼이다. 그의 주장은 (물론, 오류가 가득하지만) 도발적이고 독창적이며 재미있다.  그가 <호모 데우스>의 말미에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질문을 하는데, 그 질문들에 대한 짧은 생각을 적어 본다.

1. 유기체는 단지 알고리즘이고, 생명은 실제로 데이터 처리 과정에 불과할까?

2. 지능과 의식 중에 무엇이 더 가치 있을까?

3. 의식은 없지만 지능이 매우 높은 알고리즘이 우리보다 우리 자신을 더 잘 알게 되면 사회, 정치, 일상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

<유발 하라리, 호모 데우스, 김영사, 2017>

  1. 학자들도 생명을 명확하게 정의하지 못한다. 어떤 이들은 물질대사로, 어떤 이들은 유전자로, 어떤 이들은 열역학법칙으로 생명을 정의하려 한다. 그 어느 것도 생명을 충분하게 보편적으로 정의하지 못한다. 생명을 데이터 처리 과정이라 말하는 것은 생명이 지닌 하나의 특성을 기술한 것뿐이다.  생명을 정의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발견한 가장 정확한 생명에 대한 정의는 “생명은 의식”이라는 것이다. 생명과 의식은 하나다.
  2. 지능과 의식은 분리될 수 없다. 의식 없는 지능은 존재하지 않는다. 의식은 지능의 전제 조건이다.
  3. 의식은 없지만 지능이 매우 높은 알고리즘은 존재할 수 없다. 의식 없는 지능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알고리즘은 데이터 처리 절차일 뿐이다. 따라서 존재할 수 없는 알고리즘이 우리 자신을 더 잘 알게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데이터는 현실의 묘사일 뿐, 현실 자체가 될 수 없다. 데이터가 만들 수 있는 세계는 가상 세계일 뿐이다. 데이터 분석은 의사 결정에 도움을 주는 도구이다. 알고리즘이 직접 의사 결정을 한다면 그것은 호모 사피엔스들이 그렇게 알고리즘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유발 하라리 같은 사피엔스들이 흔히 저지르는 오류는 호모 사피엔스를 너무 높이 평가한다는 것이다. 사피엔스들은 생명이 무엇인지 모르고, 생명을 창조할 수 없다. 단지 유전자를 조작할 뿐이다. 의식이나 영의 세계에 대해서는 거의 무지한데, 모르기 때문에 그들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것은 유물론자들의 공통된 특징이다.

유발 하라리 같은 사피엔스들이 저지르는 또다른 오류는 사피엔스 자신들이 개발한 과학기술을 분리하여 타자화한다. 과학기술은 은하계 우주에서 뚝 떨어진 에일리언이 아니다. 사피엔스들이 연구하고 개발한 지식이다. 더구나 유발 하라리는 그 과학기술이 모든 것을 해결하고 궁극적으로 사피엔스를 지배한다고 예언한다. 이것은 극단적 기술결정론자들의 특징이다.

따라서 유발 하라리는 재주 좋은 입담꾼인 동시에, 유물론자이자 극단적 기술결정론자라 할 수 있다.

조금 시적이고 조금 몽상적이지만

조금 시적이고 조금 몽상적이지만

새들이 왜 먼바다의 섬들을 떠나 리마에서 북쪽으로 십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이 해변에 와서 죽는지 아무도 그에게 설명해주지 못했다. 새들은 더 남쪽도 더 북쪽도 아닌, 길이 삼 킬로미터의 바로 이곳 좁은 모래사장 위에 떨어졌다. 새들에게는 이곳이 믿는 이들이 영혼을 반환하러 간다는 인도의 성지 바라나시 같은 곳일 수도 있었다. 새들은 진짜 비상을 위해 이곳으로 와서 자신들의 몸뚱이를 던져버리는 것일까. 피가 식기 시작해 이곳까지 날아올 힘 밖에 남아 있지 않게 되면, 차갑고 헐벗은 바위뿐인 조분석 섬을 떠나 부드럽고 따뜻한 모래가 있는 이곳을 향해 곧장 날아오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런 설명들로 만족해야 하리라. 모든 것에는 항상 과학적인 설명이 있게 마련이다. 시에서 설명을 구할 수도 있고, 바다와 우정을 맺어 바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도, 자연의 신비를 줄곧 믿을 수도 있다. 조금 시적이고 조금 몽상적이지만…… <로맹 가리,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문학동네, 2001, p.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