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짚 한오라기의 혁명

짚 한오라기의 혁명

후쿠오카 마사노부가 쓴 <짚 한오라기의 혁명>은 자연을 벗하며 살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경전과도 같은 책이다. 이 책이 오래 전에 절판되어 헌책방에서조차 찾기 힘들었는데, 작년 가을 녹색평론사에서 새롭게 출간되었다.

인간들이 하는 일이 모두 무가치하고, 쓸데없다고 주장하는 저자는 세상 모든 것이 無로 돌아가야 한다고 역설한다. 저자는 지난 수십년 동안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자연농법을 개발하여 인간들의 지혜와 욕망이 얼마나 무의미한지를 증명하였다.

땅을 갈지 않고, 비료나 농약을 사용하지도 않으며, 풀조차 뽑지 않는 무위의 농법. 그 농법이 인간들이 과학이라는 것을 동원해 개발한 관행농법이나 유기농법에 결코 뒤지지 않음을 증명해냈다. 물론, 모든 것을 경제적 가치, 즉 돈으로만 환산하는 자본주의 세상의 인간들에게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농법이지만 말이다.

세상의 모든 문제를 인간들이 만들어 놓고, 인간들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알량한 과학을 동원한다. 본질을 해체하는 분석의 과학 때문에 인간들은 점점 더 자연과 신으로부터 멀어져 갔다. 아무리 과학과 기술이 발전한다 하더라도 인간들은 자연과 같이 완벽한 시스템을 창조할 수 없다. 흉내내려 하지만 또다른 문제만을 만들 뿐이다.

인간들의 욕망과 공포는 수많은 걱정거리를 만들어냈다. 결국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이러한 걱정거리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아무 일도 하지 말고, 아무 걱정하지 마라. 세상은 완벽하고, 이미 구원되어 있는데 탐욕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간들만이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이 책은 노자나 소로의 사상과 맥을 같이 하고 있지만, 사실 다음과 같은 예수의 가르침과도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또는 무엇을 마실까 걱정하지 마라.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목숨이 음식보다 훨씬 소중하지 않느냐? 몸이 옷보다 훨씬 소중하지 않느냐? 하늘에 있는 새를 보아라. 새는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쌓아 두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새들을 먹이신다. 너희는 새보다 훨씬 더 귀하지 않느냐? 너희 중에 누가 걱정해서 자기의 수명을 조금이라도 연장할 수 있느냐? 너희는 왜 옷에 대해 걱정하느냐? 들에 피는 백합꽃이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해 보아라. 백합은 수고도 하지 않고, 옷감을 짜지도 않는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온갖 영화를 누린 솔로몬도 이 꽃 하나에 견줄 만큼 아름다운 옷을 입어 보지 못하였다. 하나님께서 오늘 있다가 내일이면 불 속에 던져질 들풀도 이렇게 입히시는데, 너희를 더 소중하게 입히시지 않겠느냐? 믿음이 적은 사람들아!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혹은 ‘무엇을 입을까?’ 하면서 걱정하지 마라. 이런 걱정은 이방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에게 이 모든 것이 필요한 줄을 아신다. 먼저 아버지의 나라와 아버지의 의를 구하여라. 그러면 이 모든 것들이 너희에게 덤으로 주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할 것이고, 오늘의 고통은 오늘로 충분하다.

<마태복음 6:25-34>

하늘을 나는 새도, 들에 피는 백합화도 아무 걱정이 없는데, 인간들만이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한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이다. 지나간 시간에 얽매이지 말고, 오지 않은 시간을 가불하지 말며, 오로지 지금 이 순간을 누리라. 그리하면 아무 걱정이 없으리로다.

<짚 한오라기의 혁명>은 세상 모든 이들이 읽어야만 하는 경전이다.

2012년 책읽기

2012년 책읽기

작년 말에 아내와 딸아이가 1년 동안 읽은 책목록을 놓고 네가 많이 읽었느니, 내가 많이 읽었느니 하면서 티격태격 하였다.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고 예뻐서, 내년에는 아빠도 끼워 달라고 통사정을 해보았지만 두 여인네는 콧방귀만 뀌었다.

아내와 딸아이가 끼워주든 말든 상관없이, 올해는 책을 좀 정리하면서 읽기로 마음먹었다. 무계획, 무대책, 무신경의 3무 책읽기에 변화가 있을런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연말에 아내와 딸아이 앞에 아빠의 책목록을 들이밀 수 있지 않을까라는 작은 소망을 가져본다. 물론, 돌아오는 것은 두 여인네의 콧방귀뿐이겠지만…ㅎㅎ

2012년에 읽은 책은 다음과 같다. (이 목록은 책을 읽는대로 계속 갱신될 것이다.)

  1. 짚 한오라기의 혁명, 후쿠오카 마사노부, 최성현 옮김, 녹색평론사, 2011
  2. 나는 당신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습니다, 우광호, 여백, 2011
  3. 달려라 정봉주, 정봉주, 왕의서재, 2011
  4. 경영이란 무엇인가, 조안 마그레타, 권영설 김홍열 옮김, 김영사, 2004
  5. 넥스트 소사이어티, 피터 드러커, 이재규 옮김, 한국경제신문사, 2007
  6. 내몸 사용설명서, 마이클 로이젠, 메멧 오즈, 유태우 옮김, 김영사, 2007
  7. 매니지먼트, 피터 드러커, 남상진 옮김, 청림출판, 2007
  8. 침뜸의학개론, 정통침뜸교육원 교재위원회, 정통침뜸연구소, 2002
  9. 아파야 산다, 샤론 모알렘, 김소영 옮김, 김영사, 2010
  10. 어린왕자 두 번째 이야기, A. G. 로엠메르스, 김경집 옮김, 지식의숲, 2011
  11.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 공지영, 오픈하우스, 2010
  12. 경락경혈학, 정통침뜸교육원 교재위원회, 정통침뜸연구소, 2002
  13. 회남자, 유안, 김성환, 살림출판사, 2007
  14. 음양이 뭐지, 전창선, 어윤형, 세기, 1994
  15. 오행은 뭘까, 전창선, 어윤형, 세기, 1994
  16. 홍성수의 경영강의, 홍성수, 새로운제안, 2012
  17. 황제내경 소문, 이케다 마사카즈, 이정환 옮김, 청홍, 2001
  18. 황제내경 영추, 이케다 마사카즈, 이정환 옮김, 청홍, 2001
  19. 거꾸로 희망이다, 김종철 외 11명, 시사IN북, 2009
  20. 변산공동체학교: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윤구병, 김미선, 보리, 2008
  21. 약 안 쓰고 병 고치기, 민족의학연구원, 보리, 2009
  22. 서머힐, A. S. 닐, 이현정 옮김, 매월당, 2011
  23. 홀가분, 정혜신 이명수, 해냄, 2011
  24. 무경계, 켄 윌버, 김철수 옮김, 무우수, 2005
  25. 깨달음, 법륜, 정토출판, 2012
  26. 반야심경, 오쇼 라즈니쉬, 이윤기 옮김, 섬앤섬, 2010
  27. 선심초심, 스즈키 순류, 정창영 옮김, 물병자리, 2007
  28. 희망이 세상을 고친다, 이상호, 나무와숲, 2010
  29. 주기자, 주진우, 푸른숲, 2012
  30. 켄 윌버의 일기, 켄 윌버, 김명준 민회준 옮김, 학지사, 2010
  31. 빅 데이터 비즈니스, 스즈키 료스케, 천채정 옮김, 더숲, 2012
  32. 당신은 행복한가, 달라이 라마, 하워드 커틀러, 류시화 옮김, 문학의숲, 2012
  33. 알기쉬운 반야심경, 송원 스님, 상아, 1993
  34. 사물의 민낯, 김지룡, 갈릴레오SNC, 애플북스, 2012
  35.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 류시화, 문학의숲, 2012
  36.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마이클 샌델, 안기순 옮김, 와이즈베리, 2012
  37. 노무현입니다, 정철 장철영, 바다출판사, 2012
  38. 경혈, 미카엘 하메스 외, 구성태 외 옮김, 한솔의학, 2011
  39. 병인병기학, 정통침뜸교육원 교재위원회, 정통침뜸연구소, 2003
  40. 장상학, 정통침뜸교육원 교재위원회, 정통침뜸연구소, 2003
  41. 빅데이터와 DBMS의 시장전망, 편집부, 하연, 2012
  42. 긍정의 한줄, 스티브 디거, 키와 블란츠 옮김, 책이있는풍경, 2009
  43. 우리 침뜸 이야기, 정진명, 학민사, 2009
  44. 우리 침뜸의 원리와 응용, 정진명, 학민사, 2011
  45. 베트남 견문록, 임홍재, 김영사, 2010
  46.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혜민, 쌤앤파커스, 2012
  47. 순오지, 홍만종, 구인환 엮음, 신원문화사, 2003
  48. 생각에 관한 생각, 대니얼 카너먼, 이진원 옮김, 김영사, 2012
  49. 상처 떠나보내기, 이승욱, 예담, 2011
  50. 경험이 너를 만든다, 주디장, 이른아침, 2012
  51. 골프도 독학이 된다, 김헌, 양문, 2012
  52. 뜸의 이론과 실제, 김남수, 정통침뜸연구소, 2007
  53. 침뜸진단학, 정통침뜸교육원 교재위원회, 정통침뜸연구소, 2004
  54. 달팽이가 느려도 늦지 않다, 정목, 공감, 2012
  55. 빅데이터 경영을 바꾸다, 함유근 채승병, 삼성경제연구소, 2012
  56. 면역 항염 야채수, 심재근, 건강다이제스트사, 2011
  57.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 유홍준, 창비, 2012
  58. 1일1식, 나고모 요시노리, 양영철 옮김, 위스덤스타일, 2012
  59. 택리지, 이중환, 이익성 옮김, 을유문화사, 2002
  60. 나의운명사용설명서, 고미숙, 북드라망, 2012
  61. 빅데이터 혁명, 권대석, 21세기북스, 2012
  62. 빅데이터가 만드는 비즈니스 미래지도, 송민정, 한스미디어, 2012
  63. 100년 후에도 읽고싶은 한국명작동시, 한국명작동시선정위원회, 예림당, 2005
  64. 종교란 무엇인가, 오강남, 김영사, 2012
  65. 나는 걷는다 붓다와 함께, 청전 스님, 휴, 2010
  66. 콩, 너는 죽었다, 김용택, 실천문학사, 1998
  67. 깨달음으로 가는 위빠사나 명상, 해공, 근원, 2012
  68. 나는 없다, 해공, 책세상, 2012
  69. 담배 가게 성자, 라메쉬 발세카, 이명규 송영규 옮김, 2009
  70. 처럼처럼, 최규승, 문학과지성사, 2012
“아, 씨바, 노무현 보고 싶다”

“아, 씨바, 노무현 보고 싶다”

그래, 나 노무현 좋아. 난 자연인 노무현보다 남자다운 남자를 본 적이 없어. 나보다 남자다워. 난 서른 중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남자가 다 됐어. 그 전엔 나도 부분적으로 찌질했어. 하여튼 난 그런 사람 처음 봤고 아직까진 마지막으로 봤어.

아, 씨바, 노무현 보고 싶다.

이명박 같은 자가 그런 남자를 죽이다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내가 노무현 노제 때 사람들 쳐다볼까 봐 소방차 뒤에 숨어서 울다가 그 자리에서 혼자 결심한 게 있어. 남은 세상은,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그리고 공적 행사에선 검은 넥타이만 맨다. 내가 슬퍼하니까 어떤 새끼가 아예 삼년상 치르라고 빈정대기에, 그래 치를게 이 새끼야, 한 이후로. 봉하도 안 간다. 가서 경건하게 슬퍼하고 그러는 거 싫어. 체질에 안 맞아. 나중에 가서 웃을 거다. 그리고 난 아직, 어떻게든 다 안 했어.

<김어준, 닥치고 정치, p. 299~300>

김어준의 <닥치고 정치>를 보다가 이 대목에서 울컥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어떻게 이명박 같은 자가 노무현을 죽일 수 있었을까. 이런 일은 영화에서도 일어나지 않는 일인데, 이 빌어먹을 땅이 저주를 받긴 받은 모양이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하늘은 푸르고, 은행잎은 저리도 노랗게, 예쁘게 물드는데…

아, 씨바, 노무현 보고 싶다.

구르는 천둥이 남긴 말

구르는 천둥이 남긴 말

비를 내리게 하는 체로키 인디언 치료사 구르는 천둥(Rolling Thunder)이 남긴 말들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이 없이 할 수 있는 말들이 아니기 때문에 늘 가슴에 담아두면서 되새기고 싶다.

삶의 가르침은 그런 식으로 찾아오지 않는다. 단순히 자리에 앉아서 진리에 대해 토론한다고 해서 진리가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진리는 그런 것이 아니다. 그대는 삶 속에서 진리를 경험해야 하고, 진리의 한 부분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한다 해도 진리를 깨닫기가 어렵다. 진리는 아주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씩 다가오며 결코 쉽게 오지 않는다. (p. 54)

어떤 존재도 다른 존재를 해치거나 통제할 권리를 갖고 있지 않다. 어떤 개인이나 정부도 사람들을 강제로 어떤 조직이나 체제에 들어가게 하거나 학교나 교회로 보내거나 전쟁터에 내보낼 권리가 없다. 모든 존재는 고귀한 것이고 또한 생의 목적을 갖고 있다. 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서 스스로 자기를 다스리는 힘이 필요한 것이며, 그것이 곧 영적인 힘이다. (p. 264)

인간은 대지를 소유할 수 없다. 오히려 대지가 인간을 소유한다. 어떤 사람은 문서를 작성해 자신이 그 땅의 소유자라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이다. 우리는 대지의 소유자가 아니며, 누구도 그렇게 될 수 없다. 대지의 소유자는 ‘위대한 정령’이며, 다만 우리에게 그 권한이 부여되었을 뿐이다. 우리는 대지를 보호하는 자이다. (p. 344)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인 인디언들의 지혜를 감당하기 어렵다. 그들은 오래 전에 어떻게 살아야 할 지를 이미 깨달은 사람들이다. 얼굴 흰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하자 인디언들의 삶은 철저히 파괴되어 사라져 버린다.

몇몇 남겨진 인디언들의 잠언만이 우리를 일깨우고 있다. 과연 세상은 발전하는 것인가?

특별해지기를 포기하라

특별해지기를 포기하라

길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그리 짧지도 않았던 나의 생을 돌아보면 대체로 평온했다. 운이 몹시 좋은 편이었다. 그것 밖에는 달리 평온한 삶을 설명할 길이 없다. 육체적으로 아주 힘들었던 시기도 있었지만, 그것을 고통이라 생각하기보다는 그런 시련은 무언가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 시련도 사라져야 할 때가 되니 사라져 버렸다. 아무것도 의도한 것은 없었다.

대체로 평온한 삶 속에서 나는 순간순간 행복했는데, 그 행복한 이유는 아무것도 집착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포기가 무척 빠른 사람이었다. “열번 찍어 안넘어가는 나무가 없다”라는 속담은 나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한번은 찍어 보지만 넘어가지 않으면 그냥 포기하고 말았다. 열에 아홉은 한번 찍어 넘어가지 않는 나무였는데,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어떤 경우는 한번 찍어 넘어가는 나무가 있었고, 나는 그 나무를 선택해 버렸다. 내 삶의 궤적은 그런 식으로 결정되어졌다. 학교도, 직장도, 결혼도 모두 그런 식이었다.

사람들이 왜 성공을 하려 하는지, 왜 부와 명예를 쫓는지, 그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나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성공, 부, 명예 이런 것에 얽매이지 않고 하루하루를 살면 대체로 편안해진다. 무엇을 갖고자 하는 욕망, 무엇이 되고자 하는 욕망, 이런 것으로부터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유일하게 집착하는 것이 “책”인데, 그것도 어느 순간에는 나에게 의미가 없어질 날이 올 것이라 생각하며 여전히 책을 사고 책을 읽는다.

신경과학을 연구하는 학자, 릭 핸슨(Rick Hanson)과 리처드 멘디우스(Richard Mendius)가 쓴 책 <붓다 브레인(Budda’s Brain)>은 추천할만한 책이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인 “자아 내려놓기”는 누구나 한번은 읽어보았으면 하는 부분인데, 특히 내 삶의 궤적을 합리화할 수 있는과학적 논리를 제공해줘서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몹시 기쁘고 행복했다.

저자들이 신경과 뇌를 연구하면서 밝힌 사실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일상에서 인식하는 “나” 또는 “자아”는 환상이라는 사실이다.

신경학적 관점에서 우리가 매일 느끼는 통합적인 자아란, 완전한 환상에 불과하다. 뚜렷하게 일관성 있고 확고한 ‘나’라는 개념은 사실은 발달 과정을 거쳐 여러 하부 및 하부-하부 체계들이 만들어 낸 것으로, 여기에는 어떤 뚜렷한 중추도 없으며 ‘나’라는 개념은 근본적으로 희미하고 산만한 주관성의 경험을 통해 날조된 것이다.

우리가 매일 느끼는 “나”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환상이란 사실은 충격적이기까지 한데, 결국 종교(특히, 불교)에서 얘기하는 깨달음의 첫걸음은 이런 자아의 관념을 깨뜨리는 것이다. 자아가 원래 존재하지 않는 환상이란 사실을 받아들이면 자아를 벗어나기가 한결 쉬울 것 같다.

자아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만들어낸 개념인데, 그 개념은 욕망과 함께 자라난다.

자아는 소유에서 자라난다. 자아는 주먹 쥔 손과 같다. 손을 펴서 내어 주면, 주먹은 사라지고, 자아도 사라진다.

이 대목은 왜 법정 스님께서 늘 무소유를 주장하셨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자아에서 벗어나는 지름길이 바로 무소유였기 때문이다. 욕망이 사라지면 사라질수록 견고했던 자아도 서서히 사라질 것이고, 자아가 사라질수록 우리는 평안하면서 행복해질 수 있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몇 가지 충고들은 나를 몹시 기쁘게 했는데, 그것은 때때로 아내가 나에게 “무대책적 낙관주의자”라며 핀잔을 줄 때 써먹을 수 있는 좋은 변명거리를 제공해주기 때문이었다.

특별해지기를 포기하라. 중요한 사람이 되고 존경받고 싶다는 갈망을 버려라. 포기는 집착의 반대이므로 행복으로 가는 특별한 급행로이기도 하다.

특별한 사람이 될 이유도 없었고, 되고 싶지도 않았던 내 삶이 비로소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으니 이 어찌 기쁘지 아니하겠는가.

잔인한 본능, 그리고 희망

잔인한 본능, 그리고 희망

지구 상에서 가장 머리가 좋은 동물인 인간은 생존이 아닌 다른 이유로 자기 종족을 공격하거나 죽인다. 같은 종족끼리 전쟁을 하고, 폭력을 행사하고, 살인을 저지르는 동물은 인간이 거의 유일하다 할 수 있는데, 인간과 유전적으로 가장 흡사하다는 침팬지에게서도 이런 경향이 종종 발견되곤 한다.

제인 구달이 쓴 <희망의 이유>에는 한 침팬지가 다른 침팬지를 죽이는 잔인한 장면이 나온다.

침팬지 길카가 새끼를 안아 어르고 앉아 있었을 때, 또 다른 침팬지 패션이 나타나서 잠시 동안 노려보다가 털을 세우고 공격했다. 길카는 소리 높여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그러나 그녀는 절름발이였다. 1966년 유행성 소아마비로 손목 관절 하나가 부분적으로 마비되었던 것이다. 절룩거리는데다가 보호할 새끼까지 데리고 있어서 길카에게는 가망이 없었다. 패션은 그 새끼를 잡아채어서 앞이마를 한번 강하게 물어죽이고 나서, 딸과 어린 아들과 함께 소름끼치는 축제를 벌이기 위해 자리를 잡았다.

<제인 구달, <희망의 이유> 중에서>

침팬지 패션은 먹을 것이 없어서 길카와 그의 새끼를 죽이고 잡아먹은 것이 아니다. 이런 소름끼치는 행위가 인간만큼 빈번한 것은 아니지만, 침팬지들도 증오와 분노를 폭력적으로 표출할 수 있다는 사실은 몇 백만년 전에 같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적 형질이 유사함을 말해준다.

며칠 전, 어느 장애여성이 무자비한 구타로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경찰조사결과 이들은 지문을 남기지 않기 위해 손에 붕대까지 감았으며, 50대씩 돌아가며 때리기도 하는 등 무자비하게 김씨를 집단구타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어 이들은 김씨가 의식을 잃고 쓰러지자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고 경찰은 밝혔다.

<성폭행범으로 오해받자 장애여성 집단구타로 숨지게 해, 노컷뉴스>

이런 잔인한 사건들이 너무 자주 발생하기 때문에 인간들은 놀라지도 않는다.

맹자는 인간들이 본래 선하게 타고 났다고 말하면서 측은지심을 예로 들었지만, 인간의 본성에는 측은지심과 더불어 극도의 잔인함이 내재되어 있는 것 같다. 더군다나 요즘같이 배금주의, 물질 만능주의가 횡행하는 시대에서는 이러한 잔인한 풍경이 일상이 되고 있다.

제인 구달은 올해로 76살이 된 할머니이다. 1년에 300일 이상 지구촌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끊임없이 희망을 말한다. 그는 몇 되지 않은 희망의 상징으로 남아 있고, 아직 인간들이 지구를 더 이상 망치지 않고 구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는 여전히 낙관적이고, 유쾌하고, 그리고 아름답다.

그의 희망이 모든 사람들에게 전염되길 기도한다.

꿈이 죽으면 나타나는 징후들

꿈이 죽으면 나타나는 징후들

파울로 코엘료는 그의 첫번째 소설 <순례자>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꿈들을 죽일 때 나타나는 첫번째 징후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살면서 알게 된 사람들 중 가장 바빠 보였던 사람조차 무엇이든 할 시간이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 피곤하다고 말하고, 정작 자신들이 하는 게 거의 없음을 깨닫지 못하면서 하루가 너무 짧다고 끊임없이 불평을 하지요.

꿈들이 죽어가는 두번째 징후는, 스스로에 대한 지나친 확신입니다. 삶이 우리 앞에 놓인 거대한 모험이라는 것을 보려 하지 않는 것이죠. 그리고 스스로 현명하고 올바르고 정확하다고 여깁니다. 아주 적은 것만 기대하는 삶 속에 안주하면서 말이죠.

마지막으로, 그 세번째 징후는 평화입니다. 삶이 안온한 일요일 한낮이 되는 것이지요. 우리는 자신에게 대단한 무엇을 요구하지도, 우리가 줄 수 있는 것 이상을 구하지도 않게 됩니다. 그러고는 우리는 자신이 성숙해졌다고 여깁니다.

<파울로 코엘료, 순례자 , 문학동네, pp. 78-79>

코엘료의 말이 맞다는 가정 하에서 본다면, 나의 꿈은 이미 죽어 버렸다. 나에게 나타난 징후는 세번째 것인데, 언제부턴가 나는 삶에 대한 기대를 접었던 것 같다. 무엇이 되고자 하지도 않았고, 무엇을 이루고자 하지도 않았다. 운이 좋았던 몇몇 경우엔 내 노력보다 훨씬 큰 것을 얻기도 했고, 그렇지 않았던 대부분의 경우엔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었다.

실패했다고 해서 실망하지도 않았고, 운이 좋았다고 해서 기뻐하지도 않았다. 대부분의 경우 삶은 나의 의지와는 다르게 내 곁을 스쳐갈 뿐이었다. 나에게는 열정이 없었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그랬다. 그저 순간순간 내 자신을 물끄러미 지켜볼 뿐이었다.

내 삶은, 언젠가는 바다로 가겠지만 그것이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흐르는 강물같은 것이었다. 때로는 바위에 부딪히기도 하고, 때로는 폭포에서 떨어지기도 했지만, 내가 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삶은 그렇게 나에게 왔다가 가버렸다.

나의 꿈은 무엇인가? 코엘료의 말처럼 나의 꿈은 이미 죽어 버린 것인가?

아내가 스페인 산티아고로 떠난지 벌써 한달이 되었다. 아내의 꿈은 코엘료처럼 산티아고 길을 걷는 것이었다. 아내는 산티아고 길을 걸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 꿈을 이룬 후에 아내의 삶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

땅 위에 희망은 없었다

땅 위에 희망은 없었다

땅 위에 희망은 없었고, 신은 우리를 잊은 듯 했다. 어떤 이들은 신의 아들을 보았다 했지만, 다른 이들은 보지 못했다. 그가 왔다면, 그는 전에 했던 것처럼 아주 위대한 일들을 했을 것이다. 우리는 그도, 그가 한 일도 보지 못했기에 그가 왔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상관하지 않았다. 그들은 희망을 잡기 위해 몸부림쳤다. 그들은 그의 자비를 구하기 위해 미친 사람처럼 울부짖었다. 그들은 그가 했다고 알려진 약속에 매달렸다.

<붉은 구름,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

There was no hope on earth, and God seemed to have forgotten us. Some said they saw the Son of God; others did not see him. If He had come, He would do some great things as He had done before. We doubted it because we had seen neither Him nor His works. The people did not know; they did not care. They snatched at the hope. They screamed like crazy men to Him for mercy. They caught at the promise they heard He had made.

<Red Cloud, Bury my heart at Wounded Knee>

세상에 정의는 존재하는가

세상에 정의는 존재하는가

세계 최고의 대학이라 불리는 하버드에서 최고의 강의를 한다는 마이클 샌델 교수의 책 <정의(Justice)란 무엇인가>는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비껴갈 수 없는 여러 도덕적 딜레마들을 유명한 철학 이론들을 끌어들여 설명하고, 그것이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좋은 책이고 많은 사람들에게 권할 만하다.

이 책의 뒷부분에서 샌델 교수가 도덕적 책임의 세 가지 범주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나는 그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불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리고 그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도대체 세상에 정의는 존재하는가? 인간들의 관념 속이 아니고, 하버드 대학 같은 아름다운 강의실이 아니고,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 과연 정의는 존재하고 정의는 승리하는가? 사필귀정이란 말은 진리인가?

엊그제 미국 대통령 오바마는 사실상 이라크 전쟁이 끝났음을 선언했다. 사담 후세인이라는 독재자와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를 없앤다는 명분으로 시작한 전쟁이었다. 이 전쟁으로 4만 여명의 군인과 86만 여명의 민간인 등 총 90만명의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수많은 아이들과 여자들은 모래 사막에서 왜 죽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쓰러져 갔다. 이런 것이 정의로운 전쟁인가?

15세기 콜럼버스가 오기 전 미국 대륙에는 천만 명이 넘는 인디언들이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백인들이 이주하기 시작하면서 인디언들은 꿈에도 상상할 수 없었던 고난을 당한다. 15세기에 천 만명이 넘던 인디언들이 20세기에는 불과 20만명 밖에 살아남지 못한다. 6000천만 마리나 있던 들소들은 2천여 마리만 살아 남았다. 백인들의 사악함과 탐욕 앞에 인디언과 들소들은 겨우 멸족만을 면했을 뿐이다. 이들에게 정의라는 것이 존재했을까?

광주에서 수백 명의 무고한 국민들을 죽이고 집권한 전두환은 “정의 사회 구현”이란 표어를 내걸었다. 이 독재자는 호주머니에 29만원을 넣고 다니면서 말년에 아주 평화로운 삶을 보내고 있다. 이런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인가?

인류 역사 상 정의라는 것이 실현된 적이 있었는가? 왜 언제나 힘없는 사람은 죽어야 하고, 고통받아야 하고, 탄압받아야 하는가? 그렇다면 힘이 정의인가?

힘이 정의인 세상에서 샌델 교수의 책은 한낱 멋진 지적 유희로 끝나 버릴 것 같은 슬픈 예감이 든다.

행복을 찾아 떠나는 여행

행복을 찾아 떠나는 여행

프랑수아 를로르가 쓴 <꾸뻬 씨의 행복 여행>이라는 소설에는 “행복”라는 화두를 지니고 여행을 떠나는 정신과 의사 꾸뻬 씨가 등장한다. 꾸뻬 씨와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은 행복은 무엇인지, 어떻게 살면 행복해질 수 있는지를 고민하며 살아간다. 여행을 통해 꾸뻬 씨가 배우게 된 23가지의 지혜들은 행복에 관한 다양한 단면들을 보여준다.

  1. 행복의 첫번째 비밀은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 것이다.
  2. 행복은 때때로 뜻밖에 찾아온다.
  3.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행복이 오직 미래에만 있다고 생각한다.
  4. 많은 사람들은 더 큰 부자가 되고 더 중요한 사람이 되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5. 행복은 알려지지 않은 아름다운 산속을 걷는 것이다.
  6. 행복을 목표로 여기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7. 행복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이다.
  8. 불행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이다.
  9. 행복은 자기 가족에게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음을 아는 것이다.
  10. 행복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11. 행복은 집과 채소밭을 갖는 것이다.
  12. 좋지 않은 사람에 의해 통치되는 나라에서는 행복한 삶을 살기가 어렵다.
  13. 행복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쓸모가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14. 행복이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받는 것이다.
  15. 행복은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16. 행복은 살아 있음을 축하하는 파티를 여는 것이다.
  17. 행복은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생각하는 것이다.
  18. 태양과 바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 준다.
  19. 행복은 다른 사람의 의견을 너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20. 행복은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에 달려 있다.
  21. 행복의 가장 큰 적은 경쟁심이다.
  22. 여성은 남성보다 다른 사람의 행복에 대해 더 배려할 줄 안다.
  23. 행복은 다른 사람의 행복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행복은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지 않고(또는 경쟁하지 않고) 스스로 부족한 것이 없이 충만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며, 그 행복은 사랑하는 사람 또는 다른 이들의 행복으로 완성된다.

꾸뻬 씨가 마지막으로 찾아간 늙은 스님은 왜 행복을 삶의 목표로 삼아서는 안되는지를 친절하게 가르쳐 준다.

“진정한 행복은 먼 훗날 달성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행복을 찾아 늘 과거나 미래로 달려가지요. 그렇게 때문에 현재의 자신을 불행하게 여기는 것이지요. 행복은 미래의 목표가 아니라, 오히려 현재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지요. 지금 이 순간 당신이 행복하기로 선택한다면 당신은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행복을 목표로 삼으면서 지금 이 순간 행복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는 것입니다.”

<꾸뻬 씨의 행복 여행, p. 190>

푸른 하늘에 흘러가는 흰 구름 한 조각 바라보면서, 따사로운 햇살 속에서 피어난 들꽃 한송이를 바라보면서, 무더위를 식히는 한줄기 소나기를 바라보면서, 저녁 밥에 스며있는 농부들의 부지런한 손길을 느끼면서 우리는 순간순간 무한히 감사하며 행복해질 수 있다.

행복은 언제나 우리 마음 속에 있는 파랑새다. 찾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내 안에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이 블로그를 우연히 찾은 당신도 지금 이 순간 행복할 것이며, 그로 인해 나도 무한한 행복감에 빠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