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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y: Life

11월의 봄

11월의 봄

주간 일기예보에서 이번 주는 기온이 많이 내려간다 했는데, 늘 그렇듯이 일기예보는 빗나갔다. 따뜻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11월의 을씨년스러운 스산함이 사라졌다. 나뭇잎들은 울긋불긋 저마다의 색으로 물들고, 노란 은행잎들이 길가에 떨어졌다. 노란 은행잎들이 떨어진 길 위로 새벽 안개가 피어 올랐다.

겨울이 저만큼 다가와야 할 시절에 오히려 겨울이 떠난 듯한 느낌을 주는 11월. 꽃들이 피었다. 가을에 피는 국화는 물론이거니와, 봄에 피는 철쭉과의 연산홍도 분홍색 꽃을 피웠다. 이미 저버린 줄 알았던 코스모스도 다시 얼굴을 내밀었고, 열매 맺은 장미도 다시 꽃망울 터뜨렸다.

단풍이 들고, 낙엽은 지는데 꽃들은 철을 모른다. 지금이 11월인줄 꽃들이 알았다면 얼마나 황망했겠는가. 이렇게 포근하다가도 갑자기 서리가 내리고 눈발이 날린다면 꽃들은 얼마나 춥겠는가.

포근한 봄날 같은 햇살 속에서 엿보는 가을의 아름다운 풍광이 넉넉해 보이기도 하지만, 계절의 급격한 변화를 보면 그런 가을의 풍광을 즐길 수 있는 여유보다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낙엽이 뒹구는 쓸쓸한 11월이 아닌 꽃이 피고 포근한 11월. 한반도는 그렇게 더워지고 있다.

가을날의 행복

가을날의 행복

가을의 햇살이 정말 따사로웠다. 아파트 초입에 늘어선 여러 나무들이 저마다 다른 색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은행나무는 노란색으로, 단풍나무는 붉은색으로, 메타 세콰이어는 오렌지색으로 물들었고, 소나무는 변함없는 푸른색을 자랑하고 있었다. 하늘은 맑았고, 구름 몇 점이 떠 있었다. 바람은 서늘하게 가을을 재촉했다. 놀이터에 아이들 몇이 재잘대며 흙장난을 하고 있었다. 평화로웠다.

불현듯 내 가슴에 행복이 밀려들었다. 이 얼마나 감사한 풍경이란 말인가.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아이들의 웃음소리, 푸른 하늘, 맑은 공기. 모든 것이 제 자리에 있었다. 내가 이 지구라는 별에 와서 이렇듯 많은 것을 누릴 수 있었다니. 눈물이 나올만큼 감사하고 행복한 순간이었다.

생각해보니 나는 누리고 있는 것이 너무 많았다. 나에게는 사랑하는 아내와 딸이 있고, 존경하는 부모님이 계시고, 동생들이 있고, 친구들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고, 내가 쉴 수 있는 집이 있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고,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고, 시를 보고, 영화를 보고, 때때로 운동을 할 수가 있는 여유가 있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아름답고 평화로운 자연 속에서 욕심내지 않고 자족할 수 있는 가난한 마음을 갖게 해 준 신께 감사한다. 따스한 가을날의 햇볕 속에서, 아름다운 나무와 풀들 속에서, 아이들의 재잘거림 속에서 나는 한없는 행복을 누렸다. 이 나의 행복을 살아있는 모든 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싶다.

세월은 아무도 비껴가지 않는다

세월은 아무도 비껴가지 않는다

20년만에 친구들을 만났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더러는 머리숱이 적어져 있었고, 더러는 반백이 되어 있었다. 얼굴마다 지난 세월의 흔적을 제각기 지니고 있었다. 반갑기도 했고 어색하기도 했다.

20년 전에 찧고 까불고 풋풋한 청소년기를 같이 보냈던 녀석들인데, 이제는 거의 모두 가정을 이루고 있었고, 삶이 주는 무게에 피곤한 모습들이었다. 아내들이 있었고, 하나 둘 자식들이 있었으며 그 가정을 꾸려가야할 책임 앞에 힘겨워했다.

돈을 많이 번 녀석들도 있었고, 빚을 많이 진 녀석들도 있었으며, 이혼한 녀석들도 있었고, 들리는 바에 의하면 자살한 녀석들도 있었다. 20년의 시간은 각자의 인생을 수십 갈래로 나누어 놓고 말았다.

술 한 잔에 먹고 사는 얘기, 재산을 불리는 얘기, 자식 교육 얘기들이 나왔고, 나는 녀석들이 피워대는 담배 연기 속에서 묵묵히 그 얘기들을 주워담고 있었다. 20년 전보다 삶은 더 고되지고 있었다.

각자가 견뎌야 할 삶의 몫은 달랐지만, 그 종류는 대개 비슷했다. 산다는 것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개 같은 종류의 문제와 고민과 맞닥드리는 것이다. 녀석들과 좀 더 자주 만나면 예전의 편안함이 다시 살아날까?

내가 인정하는 몇 안되는 진리 중 하나, 세월은 아무도 비껴가지 않는다는 것. 20년만에 만난 친구들의 얼굴마다 그 진리는 또렷히 되살아 나고 있었다.

아내는 예뻤다

아내는 예뻤다

결혼 전 아내는 싱그러웠다. 화사한 복사꽃처럼 발그레한 그의 얼굴에서 향긋한 봄날의 냄새가 났다. 결혼 전의 여자들이 대개 그렇겠지만, 아내는 나의 눈에 햇살 비치기 전 풀잎에 달린 맑은 이슬처럼 보였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런 것이다.

나는 아직도 큰 길 건너 저 멀리 걸어가는 아내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키가 큰 아내가 겅정거리며 걸어가는 뒷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의 뒤태는 북적거리는 사람들 틈에서도 빛이 났다.

아내는 참으로 발랄했고, 재치있었다. 그리고 때로는 덤벙댔다. 그것들은 내가 가지지 못한, 그리고 내가 때로는 부러워했던 그런 것들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애어른처럼 굴었던 나는 늘 맏이처럼 행동했고, 늘 느긋했다. 그런 내게 아내의 재기 발랄은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아내는 글을 잘 썼고, 많이 썼다. 내게도 많은 메일을 보내 왔다. 그의 메일을 읽는 것은 그날 하루의 큰 기쁨 중의 하나였다. 지금은 그 많은 글들이 다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

며칠 전 아내는 그 당시 자기가 썼던 시 한편을 찾아 보내왔다. 그 시를 읽어 보니 우리가 결혼 전 만났던 그 순간순간들이 눈에 어렸다. 우리에게도 그렇게 아름다웠던 시절이 있었다. 가슴 뭉클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더라도 잊지 말았으면 하는그 순간들. 아내의 시와 함께 고이 간직하고 싶다.

비가 오면

비가 오면
사람들은 빨래를 걷는다
나의 그는
비가 오면 방구석에 처박힌 빨래감을
주렁주렁 빨래줄에 내다 널 것 같은 사람

비가 오면
사람들은 우산을 쓴다
나의 그는
비어 젖어 제 색을 더해가는 녹음진 공원에 앉아
한 없이 함께 젖어 갈 것 같은 사람

비가 오면
나는
그가 보고 싶은 간절함이
맘 속에 빗물처럼 고여
열번이 넘게 간 신호에도
수화기를 놓지 못하는
바보가 된다

아내와 결혼한 지 벌써 10여년이 된다. 세월이 그의 싱그러움을 조금 가져가 버렸지만 여전히 내게는 예쁜 아내이고, 고마운 아내다. 사랑해, 당신.

슬픈 고향

슬픈 고향

길가의 코스모스가 한들거렸다. 바람은 흰구름을 동쪽으로 밀어냈고, 하늘은 깊은 푸른빛을 드러냈다. 소나무들은 쏴~아 하는 소리를 내며 춤을 추었다. 할아버지 산소는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었으며, 그 옆에 서 있는 밤나무에는 밤이 탐스럽게 영글어 있었다. 태풍이 몰고 온 더운 바람으로 가을은 성큼 다가올 수 없었다. 예년에 비해 비도 많았고, 더위도 쉽게 물러가지 않았지만 어김없이 추석은 찾아왔다.

어르신들은 들에 일을 나가시고, 빈 집을 지키는 개들만이 짖어댔다. 고향은 그렇게 고즈넉했다. 명절의 풍성함이 마을의 쓸쓸함을 막지 못했다. 퇴락해가는 마을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졌다. 사람들은 도시로 향했고, 고향에는 노인들만이 남겨져 있었다. 남겨진 고향이 그렇게 사라져 버린다면 어찌될 것인가. 돌아갈 곳이 없는 사람들은 어찌할 것인가.

남겨진 고향은 그렇게 슬퍼보였다.

행복하게 사는 방법, “함께 비를 맞자”

행복하게 사는 방법, “함께 비를 맞자”

예수는 삶의 진리를 참으로 쉽게 말씀하셨다.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율법)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습니다. “‘네 모든 마음과 모든 목숨과 모든 정성을 다해서, 네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이것이 가장 중요하고, 우선되는 계명이다. 두 번째 계명은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여라’인데 이것도 첫째 계명과 똑같이 중요하다. 모든 율법과 예언자들의 말씀이 이 두 계명에서 나온 것이다.”

<마태복음 22:37-40>

결국 삶이란 신과 나와의 관계, 다른 사람과 나와의 관계를 어떻게 하느냐가 관건이 것이고, 예수는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말씀하셨다. 비단 예수 뿐만 아니고, 부처나 다른 종교의 성인들도 모두 예수와 같은 가르침을 전파하셨다. 이것이 우리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진리다.

그렇다면 다른 이를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신영복 선생의 다음과 같은 말씀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입니다.

함께 비를 맞지 않는 위로는 따뜻하지 않습니다.

위로는 위로를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위로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기 때문입니다.

<신영복, 함께 맞는 비>

다른 이를 배려하지 않고 다른 이의 처지를 사려 깊게 생각하지 않고 우산을 들어주는 것은 그냥 동정일 수 있다. 따라서 다른 이를 돕는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지만 우리는 다른 이의 처지를 살피고 도와야 한다. 그것이 서로로 인해 서로가 행복해지는 삶이다. 결코 물질이 채워줄 수 없는 그런 행복이다.

진리는 참으로 단순하지만 행하기는 쉽지 않다.

딸아이가 보고 싶을 때는

딸아이가 보고 싶을 때는

딸아이가 보고 싶을 때는 아내가 그려 준 그림을 본다. 그 그림은 그 어떤 사진보다도 더 정확하게 딸아이의 표정을 담고 있다. 마른 팔다리와 살진 얼굴, 마치 “달려라 하니”의 얼굴 통통 버전이라고나 할까. 그림 속의 딸아이는 언제나 웃고 있다. “아뿌(아빠), 노라조(놀아 줘).” 우리 노라조 공주는 장난끼 가득한 얼굴로 나를 아뿌라 부르면서 연신 놀아 달라고 매달린다. 그걸 거절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딸을 둔 아빠들의 특권이자 행복이다.

아내와 딸이 다녀간 지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 너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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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 헤어지는 것은

딸과 헤어지는 것은

공항에서 딸아이는 연신 팔을 쳐들었다. 안아달라는 얘기다. 이제 만 여섯을 훌쩍 넘긴 아이는 앞니가 빠지고 새 이가 나기 시작했다. 키도 제법 크고 몸무게도 늘어나 옛날 아기 때처럼 안고 업고 하기엔 좀 버거웠다.

아빠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아이는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이제 아빠 가면 심심해서 어떡해? 엉~ 엉~ 엉.” 공항까지 웃고 까불면서 따라온 아이의 가슴 속에는 그리움과 허전함이 공존했던 것이다. 그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이 아빠의 무심함이 부끄러웠다.

딸아이의 울음에 나도 눈물이 핑 돌았다. 피로 연결된다는 것은 이런 것인가. 나의 분신인 딸아이의 가슴에 나의 부재로 인한 허전함이 사무쳤다. 아이는 내일이면 또 이 순간의 그리움을 잊을 것이다. 그렇다해도 내 가슴은 미어졌다.

나는 딸아이에게 몇 가지를 얘기했다. 건강할 것, 친구들하고 재미있게 놀 것, 엄마 말씀 잘 들을 것 등등. 딸은 훌쩍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딸아이의 건강이 좋지 않았을 때, 나는 하루 24시간 딸과 같이 있었다. 그때 나는 미리 알았다. 내 인생에서 딸과 가장 오랜동안 같이 보낼 시간이라는 것을. 이것은 신이 나에게 준 선물이라는 것을.

이제는 딸아이와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 1년에 고작 두어달 정도. 아이가 커서 사춘기가 되면 같이 살더라도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을 것이다. 아이가 자라면 부모 곁을 떠나는 것이 자연스런 일이지만, 막상 나는 그 순간을 견디기 어려울 것 같다.

딸아이가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게 되는 날, 나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릴 것 같다. 지금은 나의 부재에 대해 딸아이가 울지만, 그날에는 딸아이의 부재에 대해 내가 울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딸아이는 엄마 품에 안겨 울면서 공항을 떠났고, 나는 비행기에 올랐다.

6살 딸아이의 첫 소설 최초 공개

6살 딸아이의 첫 소설 최초 공개

6살 짜리 딸아이가 불쑥 내민 초단편 미니 소설. 혼자 보기가 너무 아까워 블로그에 공개하기로 마음먹었다. “공주가 키우는 고양이”라는 제목의 이 소설은 총 7페이지로 되어 있고, 군데군데 딸아이가 직접 그린 삽화가 들어있다.

내 딸이라 하는 소리는 아니지만, 내가 보기에 소설의 기본 얼개를 제대로 갖춘 이야기인 것 같다. 😉 발단, 전개, 위기, 결정, 결말이 아주 명확하게 드러나 있다. 특히 고양이가 임신했다라는 장면에서 나와 아내는 뒤집어졌다.

국내 최초 아니 세계 최초로 공개되는 딸아이의 초단편 미니 소설을 감상해 보시라.

공주가 키우는 고양이, 페이지 1

공주가 키우는 고양이, 페이지 2

공주가 키우는 고양이, 페이지 3

공주가 키우는 고양이, 페이지 4

공주가 키우는 고양이, 페이지 5

공주가 키우는 고양이, 페이지 6

공주가 키우는 고양이, 페이지 7

결혼기념일에 아내가 보내준 선물

결혼기념일에 아내가 보내준 선물

아내는 내가 준비한 보잘 것 없는 선물에 기뻐했고 행복해 했다. 그리고 나에게 가슴 시린 사랑이 담긴 선물을 보내왔다. 우리는 가진 것이 많지 않지만 서로를 믿고 존중하고 사랑하므로 행복하다. 게다가 우리에게는 정말 귀엽고 예쁜 딸이 있지 않은가. 이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으랴. 우리가 행복한 만큼 이 세상에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결혼 전에 우리는 몇몇 공연에 갔었는데, 주로 꽃다지라든지, 노찾사라든지, 안치환이라든지, 김광석이라든지 이런 그룹들을 쫓아다니고 그들의 노래를 따라부르곤 했었다. 아내가 보내준 선물도 바로 안치환의 노래 “사랑하게 되면” 이다. 아내의 마음이 고맙다. 나를 잠못들게 하는 사람아!

나 그대가 보고파서 오늘도 이렇게 잠못드는데
창가에 머무는 부드런 바람소리 그대가 보내준 노랠까
보고파서 보고파서 저 하늘 넘어 그댈 부르면
내 작은 어깨에 하얀 날개를 달고 그대 곁으로 날아오르네

훨훨 훨훨 날아가자 내 사랑이 숨쉬는 곳으로
훨~훨 훨훨 이 밤을 날아서 그댈 품에 안고 편히 쉬고파

나를 잠못들게 하는 사람아

보고파서 보고파서 저 하늘 넘어 그댈 부르면
내 작은 어깨에 하얀 날개를 달고 그대 곁으로 날아오르네

훨훨 훨훨 날아가자 내 사랑이 숨쉬는 곳으로
훨~훨 훨훨 이 밤을 날아서 그댈 품에 안고 편히 쉬고파

훨훨 훨훨 날아가자 내 사랑이 숨쉬는 곳으로
훨~훨 훨훨 이 밤을 날아서 그댈 품에 안고 편히 쉬고파

나를 잠못들게 하는 사람아

<안치환, 사랑하게 되면>